모듈성

모듈성(modularity)이란 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이 독립화 된 정도를 말한다. 공학적으로 모듈화 된 제품은 다음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다.

  • 각 부품이 하는 일
  • 부품 간의 연결방식
  • 부품 간의 통신방식

모듈화의 장점

모듈성이 큰 제품은 소비자(최종 조립자) 입장에서는 필요한 기능만을 시장에서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부품개발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부품 간의 호환성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제품의 성능만 올리면 된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의사소통과 조정의 문제가 해결되고 경우의 수가 적기 때문에 개발이 간편해진다.

모듈화의 단점

모듈화가 잘 되어 있는 제품일수록 소형화, 완전히 새로운 기능의 추가, 디자인 등에서 약점을 지니게 된다. 또한 시스템 전체를 완전히 장악한 업체가 없다면 모듈성이 잘 지켜지기 어려워서 표준이 파편화되기 쉽다. 시스템 성능을 개선할 때에는 하방 호환성 확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성능 개선의 여지가 적고 표준 파편화의 위험도 크다.


모듈화된 책장, 모듈성을 포기하고 디자인을 택한 책장, 모듈화된 스마트폰 구상도, 미들타워 케이스에 모듈화된 부품을 장착한 데스크탑 컴퓨터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모듈화와 기업 범위의 변화

모듈성이 크면 기업의 분리가 쉽기 때문에 시장 거래의 장점을 이용하기 위해 기업 범위를 줄이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모듈성이 작은 경우 기업 분리가 쉽지 않다. ^f6baf1 모듈화는 장점과 단점이 있기 때문에 두 시스템의 공존이 가능하고 따라서 다양한 기업 범위가 공존할 수도 있다. 또한 기술변화와 기업역량의 변화에 따라서 기업 범위가 변화하기도 한다.

보잉 787 개발의 예

보잉은 혁신적인 항공기 보잉787을 개발하면서 기존 항공기 제조 업계의 관행을 완전히 파괴한 파격적인 아웃소싱을 행하였지만, 그 결과 연구개발에 있어 조정 실패를 경험하였다.

개별 하청업체에서 부품을 만든 후 보잉 공장에서 처음 시제기를 조립하였을 때 여기 저기 부품들이 서로 결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또한 정식 항공기 제작에 쓰여서는 안될 부품들이 쓰인 것도 발견되었다. 그 결과 보잉의 787 개발은 예정보다 3년 이상 늦어졌고 수십억 달러의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 보잉 787은 제품 출시 이후에도 화재 등 많은 문제를 일으켜서 보잉의 재정난을 가중시켰다.

보잉은 787 개발에 있어 완벽한 통제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의 비효율성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항공기와 같이 복잡하고 부품 사이의 연관성이 큰 제품의 부품들을 대부분 아웃소싱했을 때 시장 거래에서 유지해야 할 지식 거래의 양이 방대하고, 지식이 거래되어야 할 관계가 대단히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식의 이전 자체가 큰 비용을 수반하고, 경영진의 인지적 한계로 인해 복잡한 관계를 시장 계약화 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보잉787 이후 보잉의 위기]-
보잉 787 개발과정에서 발생한 비효율성은 조정실패로 발생한만큼 회고적 비효율성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일단 조정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 상태가 가장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잉 787의 문제가 거의 해결되자 연료 효율성이 좋으면서 허브-포크 시스템에서 중장거리 직항 위주로 변한 시장상황에 어울리는 보잉787은 보잉의 효자 상품이 되었다.

하지만 보잉 787 이후 보잉의 상황을 보면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보잉의 신제품인 737 MAX가 기체 결함으로 두 차례 추락 사고를 내면서 2년여간 운항 중단 되었고 이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코로나19 사태는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최근에는 기체 결함으로 보잉 항공기에서 비행 중 문짝이 날아가는 사건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수행되고 있는 조사에서 여러 건의 결함이 발견되고 있다.

방위산업체이기도 한 보잉은 록히드 마틴에게 미국 전투기 시장을 모두 빼앗겼는데 보잉의 전투기 부문이 꼭 필요한 미 정부 입장에서는 보잉에게 물량을 줄 수 밖에 없었고 보잉도 저가 입찰을 함으로써 미국 훈련기 사업을 따내었으나 이 또한 결함이 발생하여 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

이 모든 것이 787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787 때문에 생긴 막대한 손해 때문에 보잉은 무리하게 737 MAX를 시장에 내놓았고 이것이 보잉 잔혹사의 원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원천적으로는 보잉의 이사진을 단기적 이윤에 매몰된 금융 전문가들이 차지했고 이들이 경영 합리화를 위해 경험 많은 엔지니어들을 회사에서 내보내고 원가절감에만 매몰되어서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PC의 예

PC 산업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PC 기반 서비스업 등이 철저히 분업화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애플은 유독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수직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경쟁진영에 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로 간의 최적화에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PC가 점차 모듈화되어가고, 네트워크 외부성이 중요한 산업의 특성 상 폐쇄적인 애플의 시스템은 PC 시장에서는 점차 경쟁력을 잃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성이 중요하거나 특화된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디자인, 음향 계통의 종사자들은 꾸준히 맥킨토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1


초기 애플의 컴퓨터, 애플의 스마트 기기들, 초기 IBM 호환 PC, 윈텔 동맹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이러한 역사가 애플이 MP3나 스마트폰과 같은 새로운 컨셉의 기기에 빨리 적응하거나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했다. 이들 기기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임베디드적인2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소형 전자기기 업체들은 주로 하드웨어 쪽의 경쟁력을 주로 가지고 있었고 소프트웨어는 펌웨어 형태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였다. 하지만 점차 하드웨어의 성능이 발전하면서 임베디드 시스템에서도 PC와 같은 환경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애플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는데 애플은 PC 시장에서부터 키워 온 사용자 환경 설계 능력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 능력에 있어서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량은 소형 전자기기 업체나 PC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업체들 모두 모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맥킨토시와 IBM PC의 경쟁은 기업 범위의 다양성, 변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후의 애플]-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ARM 아키텍쳐를 이용한 APU를 사용해왔다. 이는 ARM 아키텍처를 이용하여 삼성과 퀄컴이 설계하고 삼성과 TSMC가 생산한 것들이었다. 현재 애플은 APU 설계능력을 지닌 설계 전문 기업을 인수하고 인력을 확충하여 ARM 아키텍처를 이용한 APU를 직접 설계하고 TSMC에 주문 생산하고 있다.

또한 애플은 ARM 아키텍쳐를 이용하여 맥킨토시 컴퓨터를 내놓기 시작하였다. ARM 아키텍처는 애플을 포함한 대부분의 컴퓨터 업체들이 사용해 온 인텔과 AMD의 AMD64 아키텍처에 비해 효율이 뛰어나긴 하지만 이미 컴퓨터 업계가 AMD64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므로 호환성에서 큰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애플이 ARM 아키텍처로의 이주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Footnotes

  1. 현재는 디자인 계통은 윈도우를 사용하는 컴퓨터의 안정성이 향상되고 관련 소프트웨어가 출시되면서 윈도우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2. 임베디드 소프트웨어(embeded software)란 어떤 특정한 장치를 제어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로서 해당 하드웨어에서만 제한적으로 작동한다. 거꾸로 말하면 해당 하드웨어에는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다. 펌웨어(firmware)와 거의 비슷한 뜻이며 대부분의 가전제품에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가 작동한다. 예를 들어 PC 구입 후에 설치하는 OS인 윈도우나 리눅스는 임베디드가 아니고(이미 설치되어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메인보드 제조사가 설치하는 BIOS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