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의 비극

공유지의 비극이란 많은 사람들이 제한된 자원에 아무런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을 때 그 자원이 과다하게 사용되어 때로는 자원이 완전히 파괴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경제학에서는 재산권이 부재했을 때 과사용 문제를 공유지의 비극으로 표현하고 교과서에는 중세 장원의 공유지 예가 가장 흔하다.

공유지의 비극은 원래 경제학자가 아니고 생태학자인 Garrett Hardin에 의해 제시된 개념이지만 경제학자들이 많이 차용하여 오늘 날에는 주로 경제학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Hardin, "The Tragedy of the Commons" 중에서

그 안에 비극이 있다. 농민들은 소의 수를 제한 없이 늘릴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 갇혀 있다. 자원은 제한되어 있는데 말이다. 공유지의 자유를 믿는 사회에서 개인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결국 모든 사람이 파탄으로 돌진하는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오늘 날 공해 문제, 자원 문제, 기후 변화 문제 등에 있어서 중요한 은유로 사용되고 있다.

수학적 모형

가정

➊ 장원에 공유 초지가 있고 농노 두 명()이 여기다 소를 풀어서 먹이고 이를 통해 우유를 생산한다.
➋ 농노 가 보유한 소의 수를 이다.
➌ 소 한 마리가 생산하는 우유의 양은 다. 즉, 모든 소는 동일한 양의 우유를 생산한다.
➍ 소 한 마리를 기르기 위한 비용은 다.
❺ 우유의 가격은 1로 일정하다.

공유 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소가 늘어날수록 소들이 먹을 풀이 줄어든다. 따라서 소 한 마리가 생산하는 우유의 양은 소의 수에 의존한다.

q=q(n_1+n_2) \tag{1}

소가 늘어날수록 풀이 줄어들기 때문에 다음이 성립한다.

\frac{dq(n_1+n_2)}{dn_i}<0 \tag{2}

이 때 소 마리가 있는 사회 전체의 우유 생산량은 다음과 같다.

Q=(n_1+n_2)\cdot q(n_1+n_2) \tag{3}

사회적 차원에서 농노의 최적 소 사육 두 수는 다음 식에 의해 결정된다.

\frac{dQ}{dn_i}=q(n_1+n_2)+(n_1+n_2)\cdot \frac{dq(n_1+n_2)}{dn_i}=c \tag{4}

농노 의 우유 생산량은 다음과 같다.

q_i=n_i\cdot q(n_1+n_2) \tag{5}

농노 입장에서 최적의 소 사육 두 수는 다음 식에 의해 결정된다.

\frac{dq_i}{dn_i}=q(n_1+n_2)+n_i\cdot \frac{dq(n_1+n_2)}{dn_i} \tag{6}=c

이 때 (2)에 의해 다음 식이 성립한다.

\frac{dQ}{dn_i}<\frac{dq_i}{dn_i} \tag{7}

따라서 누구나 자유롭게 공유지를 이용할 수 있다면 공유지에서 소의 사육 두 수는 사회적 최적보다 많다.

직관적으로 보자면 사회적으로 최적인 사육 두 수를 찾을 때는 내가 사육 두 수를 늘렸을 때 내 우유 생산량의 감소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우유 생산량 감소분까지 감안하는데 반해 나의 최적 우유 생산량을 찾을 때에는 나의 우유 생산량 감소분만 감안하기 때문에 사회적 최적보다 사적인 최적 사육 두 수가 더 많은 것이다.

예제

공유지 문제를 농노 명인 경우에 대해 풀어보라.

파탄

이 결과는 단순히 과사용으로 인해 경제적 비효율성이 생긴다는 정도지 Hardin이 말한 파탄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자원의 재생산 과정, 제한적으로 합리적인 참가자, 행동과 그 결과 사이의 지연 등을 고려한다면 실제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부들이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물고기를 잡으면 생태계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고, 그 결과 어부들의 생계에 파탄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역사적 진실일까?

여전히 많은 경제학 교과서들이 공유지의 비극을 공유재 문제의 대표적 예로 소개하지만 실제 중세 유럽에서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영국, 스위스, 프랑스 등지에서 공유지는 수백년 동안 큰 문제 없이 이용되었다.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공유지로 알았던 것이 실제로는 공유지가 아니었거나, 공유지더라도 관례, 관습에 의해 사적인 이익 추구가 제한되었거나, 공동체에 의해 자율적으로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공동체가 단순히 시장 관계가 아닌 다른 사회적 네트워크로 결속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인류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잘 알고 있었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롬은 제도의 자율적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설명하고자 했다.

많은 학자들이 흔히 두레와 같은 전통적 공동 노동과 합리성에 기반한 시장적 노동을 구분하여, 근대화를 전통적 관계가 사라지면서 시장으로 이행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 경제학자들은 전통적 관계를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기고, 문화인류학자들은 전통적 관계의 파괴에 대해 비판적이다. 하지만 전통적 관계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시장적인 이해 타산이 있었음이 최근 드러나면서 이와 같은 이분법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1

유럽이든, 한국이든 전통 사회는 시장과 비시장적 관계가 조합된 나름의 해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는 오늘 날 사회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Footnotes

  1. 안승택 (2009), “해방 전후 한국 농촌의 공동노동과 호락질: 공동노동에서 이탈하는 단독노동 배후의 공동체 이데올로기와 경제논리”, 비교문화연구, 제15집, 2호, pp. 3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