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의 이점
- 가축은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식물을 단백질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였다.
- 소나 말은 노동력을 공급하였다.
- 개는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였다.
- 고양이는 쥐를 잡기 위해 많이 키웠는데 그 결과 식량 유출을 방지하고, 위생 상태를 개선하였다.
- 동물의 털가죽을 이용하여 여러 물품을 만들 수 있었다.1
[!말과 전투]-
말은 전투에 있어 특히 중요했다. 유럽 중세의 기사들은 보병 5-10명의 전투력을 지녔다고 평가했으며 몽골의 세계 정복은 경기병의 기동성 덕분에 가능하였다. 피사로의 잉카 제국 정복 역시 말의 역할이 컸었다.
리투아니아 기병의 랜스 돌격 훈련 (1930년대)
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 후사르의 최후의 돌격이 일화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최후의 기병 전투는 러시아 내전과 러시아-폴란드 전투였다. 기병은 20세기 초까지도 유효한 전력으로 남아있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독일군의 짐마차 (1944)
기계화된 2차 대전 독일군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 독일군은 충분한 수의 동력 운송 수단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송에 말을 많이 사용하였다. 특히 길까지 좋지 않은 동부 전선의 봄에는 독일, 소련 할 것 없이 말이 가장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다. 말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서양 중심적 관점]-
재래드 다이아몬드의 책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는데 정서적 안정을 위해 개를 기른다는 것은, 혹은 그것이 개의 이점이란 것은 현대 서양인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서양에서도 개는 사냥, 목축, 수레 끌기, 경비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이용되었으며, 귀족들은 과시용으로 사육하였다. 현재의 견종 체계 역시 19세기 영국인들이 과시 목적에서 확립한 것이다.
이 외에도 재래드 다이아몬드는 많은 비판자들에게 서구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데 이는 인문·사회 과학의 영역을 다루는 자연과학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이기도 하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개는 예로부터 대중적인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농가월령가" 중 8월령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며느리 말미 받아 본집에 근친 갈제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
초록장옷 반물치마 장속하고 다시 보니 여름지어 지친 얼굴 소복이 되었느냐북어래 젓조기로 추석 명일 쉬어 보세
신도주 올여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인수 공통 전염병
스페인 세력이 잉카 제국을 무너뜨리고 북진하여 유카탄 반도에 이르렀을 때 유럽인들이 가지고 온 전염병은 더 빠른 속도로 북진하여 이미 마야 문명은 황폐해 있었다. 2
유럽인의 도래 이후 신대륙의 인구 감소
특히 미국의 인구 감소가 극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서부 영화에서 보는 황량한 곳에 저밀도로 분포하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모습은 인구 감소의 결과였다. 유럽인의 도래 이전에는 환경이 좋은 남부와 동부에서 촌락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유럽인들의 전염병은 대부분 가축으로부터 옮겨 온 것이다. 오랫동안 가축과 함께 살아 온 유라시아인은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천연두, 결핵, 디프테리아는 소, 홍역은 개, 독감은 돼지와 닭에게서 옮아온 것이다. 인간은 개와 65종, 소와 55종, 양과 46종, 돼지와 46종의 병원균을 공유해왔다. 3

멕시코에 남아 있는 마야 문명의 피라미드
왜 유라시아에서만 가축을 많이 길렀을까?
아메리카(기니피그,우티아)나 아프리카의 식용 쥐 등이 현지에서 가축화 되었고, 오세아니아에서는 유라시아에서 전해진 개, 닭과 소형 돼지가 가축으로 길러졌지만 유라시아만큼 다양한 가축이 길러진 곳은 없다.
특히 대형 가축은 (아메리카의 라마/알파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라시아에서 유래하였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소가 주요 가축으로 사육되었으나 이는 비교적 최근에 유라시아에서 전해진 것이다.

남미의 가축
기니피그, 알파카, 기니피그를 이용한 요리 (좌상부터 시계방향)
가축화를 못한 것은 인간 탓일까?
농작물과 마찬가지로 동물이 가축화되려면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했다. 농작물과 달리 인간은 대부분의 동물에 대해 가축화를 시도했으나 가축화된 동물은 극소수였다.
왜 그랬을까?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역사가 있다.
- 고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야생 코끼리를 잡아서 길들인 후에 전쟁에 이용하였다.
- 로마인들은 기린, 영양류, 두루미, 하이에나를 잡아서 애완동물로 사육했다.
- 예로부터 치타는 사냥용으로, 코끼리는 전투용으로 길러왔으나 모두 야생에서 잡아서 길들인 것이지 번식시키지는 못했다.
- 오세아니아에서는 캥거루, 물수리, 화식조 등을 잡아다 애완용으로 사육했고, 홋카이도의 아이누족은 불곰을 새끼 때 잡아다 애완용으로 사육하였다. 대부분 이런 애완 동물은 나중에는 잡아 먹었음다. (혹은 이런 애완 동물이 주인을 잡아 먹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동물들은 길들여진 것일 뿐이지 가축이 된 것은 아니었다. 가축화 할 수 없는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전투 코끼리와 인사하는 화식조
포에니 전쟁 당시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코끼리 부대와 함께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군하는 모습이다. (좌) 한니발은 카르타고를 넘어 고대 지중해 세계 가장 뛰어난 장군으로 유명하다. 한니발이 로마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칸나이 전투는 1,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략가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쳤고 현재까지도 군사전략에서 필수적으로 언급되는 사례다. 하지만 전투 코끼리는 로마군이 곧 파훼법을 알게 되면서 게임 체인저가 되지는 못했다.
화식조(우)는 파푸아 뉴기니에 사는 거대한 날지 못하는 새로 사람을 죽을 수 있는 위험한 동물로 유명하다. 실제로는 사람을 피하기 때문에 건드리지만 않으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고 한다. 얘를 애완용으로 사육하려고 했으니 문제였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사냥용 치타
실제 치타는 성격이 온순하여 현대에도 중동의 부호들이 애완용으로 기르곤 한다.
일부 동물만 가축화 할 수 있다는 증거
현재 사육되는 대부분의 가축들은 기원 전 20세기경까지 대부분 가축화가 되었고 그 후로는 새로 가축화된 주요 가축이 없다. 심지어 기술이 발달한 오늘 날에도 주요 가축 목록은 추가되지 않고 있다.
반면 현재 가축으로 키우고 있는 동물들은 여러 곳에서 독립적으로 가축화 되기도 하였다.
- 유전자 분석 결과에 따르면 회색늑대는 유라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각지에서 동시에 가축화가 진행되었다.
- 돼지는 서아시아와 중국에서 독립적으로 가축화 된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인들은 하마나 코뿔소를 가축화 하지는 못했지만 유라시아에서 소가 들어오자 금새 받아들여서 주요 가축이 되었다. 하마나 코뿔소가 가축화되지 못한 것은 아프리카인들 잘못이 아니라 하마나 코뿔소의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가축화의 결격 조건
- 🍽️ 까다로운 식성
- 육식 동물은 투입 대 산출 효율성이 나빠서 가축화하기가 어렵다. 육식 가축인 고양이는 일상적인 식용이 아니었다. 개는 원종보다 탄수화물을 잘 소화하는 잡식이며 식용 외에도 용도가 있었다. 판다나 코알라 같은 많은 초식 동물은 몇 가지 종류의 풀만을 고집하는데 이런 경우 사육하기가 곤란하다.
- 🐢 느린 성장 속도
- 코끼리처럼 성장속도가 느리다면 아무리 아무 것이나 잘 먹어도 고기용으로 사육하기는 곤란하다.
- 🐣 번식의 문제
- 감금된 상태에서 번식이 어려워서 오늘 날 동물원에서도 번식이 쉽지 않은 동물들이 많다. 치타는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지만가축화할 수 없었는데 장거리의 구애과정을 거쳐야 교미를 하기 때문이다.
- ⚡ 예민한 성격
- 영양류는 쉽게 겁을 먹고 조금만 위험을 느끼면 달아나려 하기 때문에 감금하기도 일을 시키기도 어렵고 감금해 두면 쉽게 죽는다. 가젤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가장 흔한 사냥감이었는데도 끝까지 가축화 되지 않았다.
- 🏢❌ 부적합한 사회 구조
- 말, 개, 소 등은 무리 지어 생활하며 사회적 위계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가축화 하기가 매우 쉽다. 무리를 짓지 않거나, 무리를 짓더라도 번식기에는 독립적인 세력권을 갖거나 위계질서가 없는 경우에는(영양, 사슴, 코뿔소) 인간에게 순순히 응하지 않고 여러 마리를 같이 키우기도 적당하지 않아서 가축화가 어렵다.
- ⚠️ 위험한 성격
- 곰, 얼룩말, 하마, 코뿔소 등은 고기용이나 전투용으로 이상적이나 위험한 성격 때문에 기를 수가 없다.

뒤러의 코뿔소 판화(1515)
르네상스기 독일 최고의 미술가로 알려진 뒤러의 판화 작품이다. 코뿔소는 고대 로마시대 이후 유럽에 들어온 적이 없는데 당시 포르투갈에 한 마리가 들어왔었다고 한다. 뒤러는 이 코뿔소를 직접 보지는 못하고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렸다. 뒤러는 진짜 갑옷을 입은 것처럼 그렸는데 아마 당시 유럽인들에게도 강해보이는 피부가 전투용으로 적합해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코뿔소의 갑옷처럼 보이는 피부는 사실 그렇게 튼튼하지는 않다고 한다. 물론 피부가 아무리 강해도 성격이 사나워서 전투용으로 쓸 수는 없다.
유라시아에서만 유독 가축화가 많이 일어난 이유
이와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하는 동물이 존재하려면 일단 동물 종의 수가 많아야 한다. 지금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많은 포유류가 멸종하였지만 인간이 가축화를 시작할 때에는 유라시아 대륙에 가장 많은 대형 포유류가 존재했다.
아메리카는 유라시아의 절반 이하, 오세아니아는 거의 대형 포유류가 존재하지 않았다.
왜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에는 대형 포유류가 적었을까?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에 먼저 널리 퍼지고 후일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로 건너 갔다.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함께 진화했으며 따라서 인간의 기술이 아직 고도로 발달하지 않았을 때 동물들은 인간의 무서움을 인지하고 인간을 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 대륙은 인간이 이미 상당 정도로 지적 능력이 발달했을 때 도달했다.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 대륙에 인간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배가 필요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경우 빙하기에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이 되기는 하였으나 베링 해협의 기후는 매우 혹독하기 때문에 그를 이길 수 있는 의복, 사냥 기술 등이 충분히 발달해야만 건너갈 수 있었다.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에 살던 동물들은 인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채로 고도로 발달된 사냥 능력을 지닌 인간과 조우하였다. 인간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은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은 지금도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쉽게 인간에게 잡히는 것을 봤을 때 당시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의 동물들이 쉽게 인간의 샤낭걈이 되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다.
실제 화석 증거에 따르면 인간의 도래와 동물의 대량 멸종은 그 시기가 겹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