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편향적인 사실관계의 취사선택
전반적으로 다이아몬드의 지리결정론은 주로 지중해 세계에 치우쳐 있어서 서구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다이아몬드가 가로로 긴 유라시아 대륙을 얘기할 때 주로 언급하는 것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소아시아, 그리스, 이탈리아를 거쳐 스페인에 이르는 지중해성 기후대다.1
중국, 인도, 동남아는 이곳 못지 않게 문명이 일찍 발전한 곳인데 지중해성 기후가 아니고 밀이 아닌 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가장 앞서긴 하지만 이 지역과 인도, 중국은 이란의 건조한 고원, 지구에서 가장 험난한 산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열대 우림 등 다양한 기후대를 지나야 한다.

유럽과 지중해 세계의 기후

쾨펜의 기후구분 자세히보기 (위키미디어)

실크로드 중 중앙아시아 부분
중국에서 메소포타미아로 넘어가려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을 지나야 한다. 히말라야 산맥, 카라코람 산맥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곳이고, 타클라마칸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하고 혹독한 곳이다. 실크로드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둘러싼 텐산산맥과 쿤룬산맥 언저리에 형성된 오아시스 도시들을 징검다리처럼 이용하여야 했다. 동서교역이 발달하면서 투르판, 쿠차, 호탄, 카슈가르, 부하라, 사마르칸트 등의 도시가 번성하긴 했지만 여전히 위험한 길이었다.

이란 고원의 데나 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인도로 가려면 이란 고원을 통해야 하는데 이 지역은 5천 미터가 넘는 고봉이 즐비하다. 기후도 건조기후로서 지중해 연안이나 인도 북부와는 다르다.

가욕관
간쑤성에 있는 만리장성의 서쪽 관문이다. 이 곳은 중국에서 타림분지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건조한 들판과 멀리 보이는 쿤룬 산맥이 대조를 이룬다.

타클라마칸 사막
쿤룬 산맥과 텐산 산맥에 둘러쌓인 타림분지에 있는 사막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기후가 혹독한 곳으로 유명하다. 당연히 이곳을 뚥고 지나가는 일은 불가능하고 실크로드는 쿤룬, 텐산 산맥과 사막이 만나는 곳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들을 지났다.
지리가 정말 교류를 제한할까?
고고학적 연구 결과를 보면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도 많은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가 많은데 유라시아에 비해 지리적 장벽 때문에 교류가 뒤쳐졌다는 근거가 불명확하다.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정복한 것은 중세를 지나 이른바 대항해시대2에 이르러서인데 중세를 지나면서 지중해 세계가 아닌 유럽이 하나의 문명권을 이루게 된다. 유럽은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이라는 자연 장애물이 있지만 하나의 문명권을 이루었고 중세 유럽의 발전이 대항해시대를 열게 했다는 점에서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은 지리적 조건 외에 또 다른 설명을 필요로 한다.
중국이 유럽에 뒤쳐진 이유?
다이아몬드는 중국이 유럽보다 뒤진 이유(대분기)도 지리로 설명한다. 중국은 평탄한 지형이라 대제국이 성립했고, 유럽은 지리적 장애물 때문에 소국끼리 경쟁했는데 소국끼리 경쟁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1) 중국에 비해 유럽이 지리적 장애물이 많다는 주장, 2) 소국끼리 경쟁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주장, 3) 유럽에 통일 왕조가 등장하지 않은 것이 지리적 장애물 때문이라는 주장, 4) 중국은 늘 대제국이 통치했다는 주장이 조합되어 있는데 어느 주장 하나 사실에 부합하거나,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은 없다.
더 자세한 비판은 뒤에서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한 가지만 언급하도록 하자. 학자들은 흔히 중국의 문명이 중세까지는 유럽보다 앞서 있었다고 평가하는데 지리적으로 유리한 유럽이 중세까지는 왜 뒤쳐져 있었을까? 유럽의 중세는 역사상 가장 분권적이었는데 말이다.
지리 결정론의 한계
지리결정론은 인류의 문명이 크게 높은 단계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유효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문명이 복잡해질수록 다른 사회, 정치, 문화적인 요인들이 더 중요해진다.
사실 산업혁명 이전 인류의 생활수준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가 해명해야 할 더 중요한 문제는 지리보다는 다른 인문환경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지리적 환경은 (다이아몬드의 이론처럼 단순한 관계는 아니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뒤에서 더 자세히……
농업과 제도의 관계
농경 덕분에 안정적인 정주가 가능해졌고 잉여 생산물이 풍부해지면서 사회계층이 생겼다는 것이 확고한 정설이었고 다이아몬드의 논지도 여기서 출발한다.
하지만 튀르키에에서 쾨베클리 테페 유적이 발견되면서 반론이 제기되었다.
쾨베클리 테페는 기원전 9500년 전에서 8000년 전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석기 유적이다. 발굴팀은 이를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신전으로 보았는데 주변에는 농업이나 정주의 흔적은 없었다. 그런데 통설에 따르면 거대한 종교 구조물은 사회·경제적으로 문명이 고도화된 뒤에 출현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통설과는 달리 농경 덕분에 사회 계층이 발생한 것이 아니고 수렵·채집 단계에서 사회 계층이 발생한 후 그 덕분에 농경이 시작되었을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최근 추가 발굴에서 거주, 상업 시설로 추정할 수 있는 흔적들이 발견되면서 사회 계층이 농업에 선행했다는 가설이 다시 도전 받게 되었다.
농업과 사회 제도의 관계에 대해서는 농업이 선행 조건이었다는 통설, 쾨베클리 테페 발굴 이후 제기된 제도의 발전이 선행조건이었다는 설, 그리고 두 요소 중 어느 한 쪽이 선행 조건이었다고 볼 수 없고 다양한 양상이 전개되었으며 두 요소는 양의 피드백 관계에 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어떠한 가설이 진실에 가까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이아몬드 주장의 대전제에 해당하는 부분이 논쟁 중이라는 사실은 지리 결정론이 과학적인 이론이라고 할 수는 없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쾨베클리 테페의 유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