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기술의 추격
1960년 단순조립단계로 민간기업들이 자동차 산업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국내에 자동차 기술이 전무하였으므로 전적으로 외국 업체에 의존하였다. 신진 자동차는 GM과, 현대는 포드와 합작을 통해 자동차를 생산하였다.
1980년대 들어 기업 별로 전략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현대의 경우 포드와의 합작이 해체되면서 고유 모델 개발의 경로를 따랐던 반면 기아, 신진(GMK)은 계속해서 자본합작에 의존하였다.아직 현대의 경우도 주요 부품은 도입하였고 설계 역시 해외의 전문 설계업체에서 도입하였다.
특히 해외의 전문 설계업체가 중요했는데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점차 현대는 독자 설계능력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는 합작 외에도 기술도입의 가능성이 열려 있었음을 뜻한다.

현대 최초의 고유 모델 포니
미쓰비시에서 플랫폼을 라이센싱하고 스타일링은 이탈디자인에 의뢰하여 개발하였다.

컨셉카 포니 쿠페
포니의 스타일링을 맡은 이탈디자인은 전설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주지아로가 설립한 자동차 전문 디자인 기업이다. 포니의 디자인은 당시 세계적인 인기 차종이었던 폭스바겐의 골프와 유사한데 이는 골프도 이탈디자인에 스타일링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는 이탈디자인에 포니 쿠페 컨셉카 디자인도 의뢰하였는데 양산되지는 못하였다. 최근 현대가 내놓은 아이오닉6가 바로 이 컨셉카 포니 쿠페의 디자인을 차용하였다고 한다.

현대 최초의 독자 개발 모델 엑센트
현대자동차의 기술 자립
현대자동차에게 구형 엔진 설계를 제공해 왔던 미츠비시는 엔진 설계기술의 이전을 거부했고 따라서 현대자동차는 1984년에서 1992년까지 알파 엔진을 스스로 개발해야 했다.
이 때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 ** 학습기각**
학습기각은 새로운 능력들과 시너지를 창조하기 위해 기존의 틀에 박힌 절차와 경직성을 제거하는 조직적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엔진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현대는 울산의 연구개발센터와는 전혀 다른 자사의 새로운 연구개발센터를 마북리에 설립하였다. 울산의 센터는 수입한 기술을 다소 수동적인 방식으로 모방하고 적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 단계 생략형 추격
현대가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했을 때는 카뷰레터 방식이 표준이었다. 그러나 엔진기술의 추세가 새로운 전자분사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안 현대는 과거의 자취를 따라가기보다는 단계를 건너 뛰어 새로운 형태의 엔진을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 열린 보호주의
엔진 프로젝트에서 미츠비시가 약간의 도움을 주긴 했지만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현대에 기술을 이전하는 것을 꺼렸다.
현대는 영국의 리카도사와 같은 전문연구개발 기업에 의존하였다. 리카도사의 사업은 차를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기술 자체를 파는 것이었기 때문에 현대에게 열린 태도를 견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