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의 불공정한 취사선택
맥클로스키는 제도론이나 자본축적론을 비판하기 위해 그런 것은 중세 베네치아에도 황금기 네덜란드에도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러한 비판은 충분히 타당하다. 그런데 그러한 비판은 본인의 주장에도 가해질 수 있다.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베네치아와 북 이탈리아 여러 도시들, 스위스, 바르셀로나, 한자 동맹의 도시들, 라인강 유역의 도시들, 프로방스의 도시들도 시민 권력이 지배했는데 여기서는 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다른 곳은 토지 귀족이나 주교들의 영향력이 컸다고 쳐도 베네치아와 스위스의 도시 동맹, 황금기 네덜란드에서는 상인들이 확실히 존엄한 위치에 있지 않았는가?
맥클로스키는 다른 학설들에 대해서는 시간적 불일치성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이론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측면이 있다.
학문, 기술, 탐험의 존엄화
아이작 뉴턴은 시골 소지주(Gentleman Farmer) 집안 출신으로 귀족과는 거리가 멀었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간 계층에 속했다. 하지만 지적 업적 하나만으로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 받았고 정식 기사 작위를 하사받고 왕족과 공이 큰 귀족들만 묻히는 웨스트민스터에 묻힐 수 있었다. 여전히 토지 귀족의 폐쇄성이 컸던 프랑스 출신 볼테르는 이런 영국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뉴턴이 처음이 아니다. 르네상스기 피렌체의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브루넬리스키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술가로서 존엄을 획득했고, 중세에 학문적으로 천시되었던 수학이나 외과학은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존엄한 학문으로 격상되었다. 뉴턴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독보적인 존재였고 18세기 말 와트에 이르러서는 순수한 기술만으로 존엄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콜럼버스, 다 가마는 탐험 활동을 통해 귀족 작위를 획득하였지만 이는 군사 및 선교 활동의 일부였고 이러한 활동은 원래 존엄한 것이었기에 큰 변화는 아니었다. 17-18세기에 이르러 탐험은 과학적 탐구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제임스쿡은 탐험 활동을 통해 평민 출신의 해군 선원에서 후일 왕립학회 회원이자 국민 영웅으로 격상되었다.
단순히 상인, 부르주아의 존엄화 뿐 아니라 이러한 지적 존엄화까지 고려해야 산업혁명이라는 현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 18세기 말일까?
맥클로스키는 산업혁명의 시기를 18세기 말로 고정하고 그 때에만 있었던 영국의 특징을 찾는다. 그런데 산업혁명의 특징이 더 일찍부터 나타났다는 증거들, 그리고 본격적인 소득의 증가는 훨씬 늦게 나타났다는 사실 등 때문에 최근에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부정하는 시각도 있다.
맥클로스키도 이러한 여러 시각들을 논의하기는 하지만 별 근거 없이 그래도 18세기 말이 통설이라고 하고는 바로 18세기 말 영국의 특징을 찾기 시작하고는 부르주아의 존엄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문화와 경제 현상의 복합성
맥클로스키는 문화 변동이 산업혁명의 원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보다는 다른 설명들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집중하는데 이 비판들은 대부분 타당한 것이다. 그 후 맥클로스키는 밀의 잔여법을 들고와서 다른 것들이 모두 아니기에 문화가 범인이 맞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론을 입증할 때 경쟁이론들을 배제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본인의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와 결합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반증이 어려운 경쟁이론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혁명과 같은 커다란 사회적 사건에 대해 특정 원인을 제거하거나 특정 원인만이 근본적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매우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맥클로스키는 과학의 발달은 18세기 말 기술, 경제 발전에 별 영향이 없었다는 기술사가들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과학 발달이 산업혁명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기각한다. 이 주장에는 대부분 과학사가들, 기술사가들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은 19세기 중반 이후 기술 및 경제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현대 사회는 과학 발달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본질적인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18세기 말 기술 및 경제의 발전은 19세기 중반 이후 발전으로 자동적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더라면 18세기 말의 발전은 중단되어 원시적인 증기기관차가 돌아다니는 공장제 수공업의 세계가 지금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