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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산업혁명, 그리고 그 이후의 경제발전도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중요시하는 분배적 효율성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고 결국 혁신이 핵심이다. 그런데 왜 혁신의 시대 (“age of innovation”)는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되었을까? 우리는 많은 경쟁이론들을 살펴보았지만 모두 18세기 말 영국에서 일어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을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했다.

🏪 시장의 발달
시장은 이미 중세 후기부터 발달하였고 중국, 인도, 이슬람권 모두 유럽보다 시장화에 앞서 있던 시기가 있었다. 시장 발달로 인해 얻어지는 분배적 효율성은 산업혁명 이후 발생한 효율성 증가에 비하면 미미하다.

💰🚀이윤 창출 기회의 확대
이윤 창출이 기회는 중세에도 많았고 실제 그것을 이용한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중세에는 혁신의 시대가 시작되지 않았다. 중국이나, 일본, 고대 유럽, 고대 이집트도 마찬가지다.

🧠💼 합리성과 투자의 확대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늘 이웃들이 인색하다고 불평했다.

📜🔏 재산권의 확립
재산권은 고대에도 확립되어 있었고 17-8세기 영국에서 대단히 큰 변화가 있지도 않았다.

🇬🇧🧬👑 우월한 영국인
영국인이 특별히 유전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왜 하필 18세기 말이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맥클로스키는 직접 경쟁이론들을 모두 기각한 후 아직 기각되지 않은 것은 문화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잔여의 방법

맥클로스키는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기 위해 이른바 잔여법을 사용하였다. 19세기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A System of Logic”에서 다섯 가지 추론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잔여법(Method of Residue)이다. 잔여법은 다음과 같이 기호로 나타낼 수 있다.

잔여법의 예

  • A, B, C가 x, y, z와 함께 일어났다.
  • B는 y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 C는 z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 그러므로 A가 x의 원인이다.

부르주아의 존엄과 자유

17-8세기 영국, 황금기 네덜란드에서 유례가 없이 일어난 이유는 비지니스를 숭상하는 문화의 발생이다. 이 당시 부르주아들은 이전 시대의 토지 귀족만큼 존엄한 존재가 되었다. 이전까지는 유럽 상공업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토지 귀족과 부르주아 사이에는 사회적 지위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맥클로스키 "부르주아의 존엄" 중

태초에 말이 있었다. 부르주아들이 이끄는 자유로운 혁신은 마침내 사람들의 말에서 존중받게 되었다. 예를 들어 북서유럽의 상인, 기계제작자, 공업인은 사상 최초로 “젠틀맨”의 지위로 격상되었다. 사람들은 예전에는 명문가 태생 유한계급에게 썼던 말로 중간 계급을 부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홀란드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영국 식민지에서, 그리고 몇십년 뒤에는 프랑스에서 명문가의 유한계급이 무역과 혁신에 뛰어들었다.

수평파였던 William Walwyn(1600-1681)은 지주의 둘째 아들이었으며 주교의 손자였다. 하지만 그는 젠틀맨이라는 이름을 피해서 무역에 종사하는 평범한 런던 상인이 되었다. 휘그당원이자 직물 상인이자 정치가였던 Slingsby Bethel은 1680년에 “영국은 젠틀맨, 때로는 귀족의 차남을 편견 없이 행정, 법, 상업, 의학에 종사토록 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고 썼다. 1733년 볼테르는 영국에서 “귀족의 형제는 상업을 그 밑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포드 남작이 영국을 다스릴 때 그의 남동생은 알레포의 상인에 불과했다.”고 썼다. 동시대의 한 스위스 여행가는 다음과 같이 썼다. “프랑스나 독일과 달리 영국에서 상업은 경멸당하지 않는다. 좋은 집안의 자제거나 심지어 작위가 있는 사람도 그 지위를 잃지 않고 상인이 된다.” 실제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귀족이 상업에 종사한 것이 들키면 작위를 빼앗겼다. 이 법칙은 고대부터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테베에서는 상업에서 10년 간 멀리하지 않은 자는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있었다”라고 하면서 이에 동의했다.

놀랍게도 고대의 법칙은 바뀌었다. 북서유럽 엘리트들은 부르주아의 커리어를 명예롭게 여기게 된 것이다.

영국에서는 귀족 바로 아래 젠트리라는 계급이 있었는데 적어도 토지 수입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땅을 가졌으며 사제, 군인, 공무원, 법률가 등의 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젠틀맨은 원래 하급 젠트리를 일컫는 말이었다.
The Leveller 청교도의 한 분파로 잉글랜드 내전시기에 법 앞에서의 평등, 종교적 관용, 참정권 등을 주장했던 일종의 정치적 운동을 펼친 분파
영국 최초의 총리인 Robert Walpole을 가리킨다. Robert Walpole은 하노버 선제후였다가 영국왕이 된 조지1세가 각의의 주재를 맡겼기에 최초의 총리로 여겨진다. 경제사에서는 남해회사 포말사건을 주도적으로 처리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혁신을 위해 필요한 존엄

시장의 존재사업의 자유는 당연히 중요하다. 상인들이 지배한 스위스, 북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에서는 상공업자들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하지만 일본, 오스만 제국, 프랑스에서는 공장을 열기 위해서는 왕의 허가가 필요하였다. 이런 곳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불확실의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자유만 가지고서는 안된다. 혁신은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것이다. 근본적 불확실성은 성공 확률도 주어지지 않은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혁신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는 과정이기에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것이다.

무엇보다 혁신은 일상적인 이해타산, 축적, 무역으로 설명할 수 없다. 혁신은 근본적으로 불확실하므로 로 혁신을 결정할 수는 없다. 희망, 용기, 신념 무엇이든 일상적 이해타산을 넘어설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하다. 이해타산, 축적, 무역으로부터 혁신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훨씬 오래전, 영국 이외의 곳이었을 것이다. 혁신은 새롭게 존중받게 됨으로써 희망, 용기, 신념을 가지게 된 상인과 엔지니어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므로 열정, 감정적 동기 등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부르주아를 숭상하는 표현들이 등장했을 때 부르주아 뿐 아니라 귀족, 장인들까지 혁신의 시대에 기꺼이 동참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귀족의 권력과 위엄은 계속 유지되었지만 또한 상공업이 존중 받았다. 일본과 중국에서 상인은 천민과 같은 것이었고, 기독교 세계에서도 상업은 신의 적으로 여겨졌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정치, 종교, 관리, 문학에 뛰어들지 상공업에 종사하려 하지 않았다.

상업과 혁신에 대한 존중, 그리고 자유가 런던과 암스테르담에서 확대되면서 근대가 형성된 것이다.

제도란 무엇인가?

아세모글루와 노스는 제도가 선택의 영역을 구성하고 경제주체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는 지극히 신고전학파(신제도학파)적 개념에 입각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 속 개인들은 단순히 경제적 동기로만 행동하지 않았다. 실제 사람은 가 아니다. 중세 후기 잉글랜드의 농민도 마인츠의 부르주아도 재산권은 보장 받았지만 산업 혁명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제도와 인간 동기의 다양한 측면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제도는 단순한 게임의 규칙, 인간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무엇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인가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부르주아의 존엄이며, 용기, 열정, 희망, 신념인 것이다.

[!현대 뇌과학에서 제도와 문화]
제도와 문화에 대한 맥클로스키의 견해는 특별한 것은 아니고 베블렌 이후 많은 경제학자들이 믿어왔고, 사회학 등 여타 사회과학에서는 상식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문화와 제도에 관한 맥클로스키의 견해는 현대 뇌과학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여기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혁신과 축적의 함수로서 총생산함수

: 혁신가의 존엄
: 혁신가의 자유
: 혁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렌트
: 자본 투입량
: 인적자본 계수
: 노동 투입량

고전파, 마르크스, 신고전파(Samuelsonian)적인 축적슘페터, 오스트리아학파적인 혁신을 가리킨다. 변수들은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고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인데 사회학적, 정치학적인 것들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경제성장은 가 주도한다. 따라서 우리는 의 변화를 설명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부르주아의 존엄인 것이다.

부르주아의 존엄이 일으킨 좋은 외부성

부르주아의 존엄과 자유가 생겨난 것은 미래를 내다본 혜안이 아니라 역사적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스미스나 밀은 부르주아의 시대를 보고 이론을 제시한 것이고, 그들의 이론이 정책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이다.

그리고 부르주아들은 그저 사익 (경제적 이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을 추구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중 받고 자유로운 부르주아의 열성적인 혁신 덕분에 전 인류가 혜택을 보게 되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스미스가 옳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근본 원인

부르주아의 존엄과 자유가 근접원인이라면 그것을 있게 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맥클로스키는 단일한 근본 원인을 제시하지 않고 동양 혹은 이전 시대 서양과 (서)유럽을 구분지을 수 있는 여러 요인들의 상호작용을 제시하고 있다. (재산권은 물론 중요하지만 이것은 당연한 전제 조건이므로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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