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이성 가설과 신체표지 가설

현대 뇌과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명인 다마지오는 선택에 대한 가설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상위-이성 가설

인간이 선택에 따른 비용이득을 분석하여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는 가설이다. 미시 경제학은 이 가설을 극단적으로 적용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선택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정하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택에 있어 고려해야 할 것들은 무한대에 가깝지만 인간의 주의집중과 작업기억의 용량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신체표지 가설

신체표지 (somatic marker)가 어떤 선택지를 생각했을 때 부정적 혹은 긍정적 느낌을 줌으로써 자동 경보신호로 기능한다. 신체표지가 선택의 가능성을 확 줄여주고 이성은 그 안에서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현대 뇌과학자들은 지칭하는 단어는 서로 다르지만 대체로 신체표지 가설을 지지한다.

1차 감정과 2차 감정

다마지오는 감정을 1차 감정2차 감정으로 구분한다. 1차 감정은 우리가 티라노 사우르스를 눈 앞에서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일종의 본능으로 볼 수 있으며 하등 동물도 지니고 있는 뇌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2차 감정은 경험을 통해 뇌에 각인된 감정으로서 예를 들자면 개에게 물린 사람이 순한 개를 봐도 공포를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이다.

2차 감정은 전전두엽 부위가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의 전전두엽은 유난히 크다. 사고나 병으로 전전두엽 부위를 손상당한 사람들의 기록으로 뇌과학자들은 전전두엽의 기능을 알게 되었다.

전전두엽과 자동화 기전

일반적으로 전전두엽 부위를 손상당한 사람들에게 말을 시켜보면 사고나 표현력이 극히 정상적이고 이성적인데 오래동안 얘기를 해 보면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정도다. 그런데 전전두엽 손상 환자들은 일상 생활, 직장 등에서 “합리적” 판단을 내리지 못해서 많은 문제를 겪는다. 이성에는 문제가 없고 감정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왜 실제로는 이성적 판단과 결부된 부분에서 문제를 일으킬까?

전전두엽 손상 환자의 사례

다마지오의 환자 중에 전전두엽이 손상당한 환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운전을 하다 빙판을 만났는데 다행히 무사히 병원에 왔다. 그는 바로 앞에서 다른 사람이 브레이크를 잘못 밟아서 웅덩이로 빠진데 반해 본인은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 빙판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다고 매우 침착하게 얘기했다. 전전두엽의 손상으로 당황과 공포의 느낌의 방해가 없으니 사려 깊은 결정을 침착하게 해낸 것이다.

반면 이 환자에게 다음 예약 날짜를 두 날짜 중 하나로 정하게 하자 이 사람은 30분이 넘게 각 날짜의 장단점을 열거하고, 그에 근거해서 비용-이득 분석을 끊임 없이 늘어놓았다. 듣기 피곤해서 그냥 두 번째 날에 오라고 조용히 이야기하자 “예, 그게 좋겠군요”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이 환자의 일화는 자동화 기전이 없을 때의 문제를 보여준다. 정상적인 전전두엽이라면 시간 낭비를 부정적인 것으로 표시하거나 본인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리면서 당황스러움으로 표시할 것이다. 이러한 자동화 기전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는 빠른 시간 내에 판단을 내린다. 반면 전전두엽 손상 환자들은 이성적 판단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고, 경제학자들은 그러한 사고방식에 익숙하지만 실제로 인간의 판단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인간은 감정에 의해 대부분의 판단을 하고 이성이 그 중에서 일부분을 거들 뿐이다. 그래서 뇌과학자들은 감정과 이성이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1

문화, 제도, 관습

2차 감정은 전전두엽에 신체 표지로서 존재한다. 신체 표지는 어떠한 상황에서 그에 대한 감정을 일으키도록 되어 있는 프로그램과 비슷한 것이다. 이것은 경험을 통해서 평생 형성되는 것이다.

문화와 제도, 관습은 공동체 내에 있는 사람들이 신체 표지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것들은 공동체 내에 있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신체 표지의 요소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문화와 제도, 관습은 사람의 선택을 제약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떠한 선택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지 이해타산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한 편으로는 어떠한 행동에 긍정적 감정을 들게 함으로써 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 또한 문화, 제도, 그리고 관습이다.

[!과학철학 논의로의 확장]-
어떤 경제학자는 선호-정보-합리적 선택 구조가 실제 인간의 행동 패턴을 모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을 예측하는데 유용하다면 과학으로서 가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효용극대화와 이윤극대화는 예측력이 있는 것일까? 개별 행위자의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예측력이 없음이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경제학자는 전체 시장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예측력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예측력 있어 보이는 집계변수를 틀린 것이 확실한 가설로부터 도출해야 할까? 다른 현실과 잘 맞는 설명이 있다면 가정을 수정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현실 설명으로서의 경제학 모델은 어떨까? 경제주체가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선호-정보-합리적 선택 모델은 그 행동의 이유를 잘 설명할까? 미시경제학 책은 얼핏 이해가 안되는 행동도 모두 효용, 이윤 극대화의 결과라고 “설명”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고 이는 많은 경제학도들을 매혹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어떠한 행동에 이유를 부여하는 순간, 그리고 그 이유가 단일 원칙으로부터 부여되는 순간 더 강하게 설명되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생각해보자. “그는 죽음을 택했다. 왜냐면 사는 것이 효용이 낮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설명이란 왜 그런 선택이 발생했는지 인과 구조를 제시하고 그 설명이 틀릴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하며, 다른 사례에도 적용 가능하며, 반례를 통해 수정 가능해야 한다. 즉 설명이란 단순히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효용극대화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고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설명 못한다는 것과도 같은 얘기일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흔히 몇 개의 핵심 가정으로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는 방식을 물리학에 비교하면서 경제학을 과학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물리학은 가정으로부터 도출한 새로운 가설의 예측력이 매우 뛰어난 반면 경제학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경제학자들은 관찰된 현실을 보고 새로운 모형을 만들거나 기존 모형을 수정하는 방식을 쓴다. 이 때문에 어떤 과학철학자들은 경제학을 과학이 아닌 수사학으로 보기도 한다.

이상의 논의는 과학의 경계짓기, 과학적 실재론 vs. 도구주의, 설명주의 나아가서 설명, 인과, 입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철학적 논의로 확장될 수 있다.

도덕성과 합리적 선택

경제학자들은 이타적 행동, 도덕적 행동까지 합리적 선택의 틀로 끌어들이곤 한다. 도덕성이란 선호가 도덕적이란 것이다. 여기서 도덕성과 합리적 선택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자.

Footnotes

  1. 아마도 이는 실제 인간의 판단 과정에서 감정과 이성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와 상관 없이 개념적으로 감정과 이성은 분리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