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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불공정한 취사선택

맥클로스키는 제도론이나 자본축적론을 비판하기 위해 그런 것은 중세 베네치아에도 황금기 네덜란드에도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러한 비판은 충분히 타당하다. 그런데 그러한 비판은 본인의 주장에도 가해질 수 있다.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베네치아와 북 이탈리아 여러 도시들, 스위스, 바르셀로나, 한자 동맹의 도시들, 라인강 유역의 도시들, 프로방스의 도시들도 시민 권력이 지배했는데 여기서는 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다른 곳은 토지 귀족이나 주교들의 영향력이 컸다고 쳐도 베네치아와 스위스의 도시 동맹, 황금기 네덜란드에서는 상인들이 확실히 존엄한 위치에 있지 않았는가?

맥클로스키는 다른 학설들에 대해서는 시간적 불일치성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이론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측면이 있다.

왜 18세기 말일까?

맥클로스키는 산업혁명의 시기를 18세기 말로 고정하고 그 때에만 있었던 영국의 특징을 찾는다. 그런데 산업혁명의 특징이 더 일찍부터 나타났다는 증거들, 그리고 본격적인 소득의 증가는 훨씬 늦게 나타났다는 사실 등 때문에 최근에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부정하는 시각도 있다.

맥클로스키도 이러한 여러 시각들을 논의하기는 하지만 별 근거 없이 그래도 18세기 말이 통설이라고 하고는 바로 18세기 말 영국의 특징을 찾기 시작하고는 부르주아의 존엄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문화와 경제 현상의 복합성

맥클로스키는 문화 변동이 산업혁명의 원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보다는 다른 설명들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집중하는데 이 비판들은 대부분 타당한 것이다. 그 후 맥클로스키는 밀의 잔여법을 들고와서 다른 것들이 모두 아니기에 문화가 범인이 맞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론을 입증할 때 경쟁이론들을 배제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본인의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와 결합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반증이 어려운 경쟁이론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혁명과 같은 커다란 사회적 사건에 대해 특정 원인을 제거하거나 특정 원인만이 근본적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매우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맥클로스키는 과학의 발달은 18세기 말 기술, 경제 발전에 별 영향이 없었다는 기술사가들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과학 발달이 산업혁명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기각한다. 이 주장에는 대부분 과학사가들, 기술사가들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은 19세기 중반 이후 기술 및 경제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현대 사회는 과학 발달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본질적인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18세기 말 기술 및 경제의 발전은 19세기 중반 이후 발전으로 자동적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더라면 18세기 말의 발전은 중단되어 원시적인 증기기관차가 돌아다니는 공장제 수공업의 세계가 지금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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