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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K. Arrow

모든 거래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모든 거래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앞서 서로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거래에는 계약 이행을 강제하는 제 3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일일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거래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하면 남을 속여서 이득을 챙길까 고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피곤했을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사회가 기대하는대로 행동하고 또 남들도 그러리라는 믿음, 즉 신뢰를 가지고 행동한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사익 추구가 자동으로 보편적 이익의 추구로 이어지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호혜적 거래를 위해 필요한 신뢰가 충만하다면 사익과 보편적 이익은 적당히 일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2500년 전 공자는 사회 유지에 신뢰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공자의 "논어" 중에서

자공 여쭈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 말씀하시다. “먹을 것을 풍족히 하고, 군대를 튼튼히 하며,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자공 여쭈었다.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셋 가운데 무얼 앞세우리까?”
공자 말씀하시다. “군대를 버려야지”
자공이 여쭈었다. “부득이 또 버려야 한다면 나머지 둘 가운데 무엇을 앞세우리까?”
공자 말씀하시다. “먹을 것을 버려야지! 예로부터 죽음은 다 있게 마련이지만 백성들이 믿어 주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성립되지 않거든.”

공자의 "논어" 중에서

법령으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백성은 법망을 뚫고 형벌을 피함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백성은 수치를 알아 바른 길로 나아갈 것이다.

신뢰와 경제발전

신뢰에 대한 논의에서 주의할 점

사회적 신뢰가 중요하다는 점은 사회학자나 문화인류학자들에게는 상식과 같은 것이고 최근에는 경제학자들도 주목하는 바이다. 하지만 데이터에 나타나는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연구가 필요해보인다. 신뢰를 측정하는 문제도 있는데 “남을 얼마나 믿느냐?”라는 질문은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고 신뢰에도 여러 층위가 있을 수 있으므로 바람직한 질문은 아니다. 행위 기반으로 더 구체적으로 질문(1)하거나 실제 실험을 통해 신뢰 수준을 측정하는 대안이 있을 수 있으나 여전히 신뢰라는 개념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막연한 측면이 있다.

근면성

막스 베버의 논지는 근면성과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많은 문화에서 근면성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아 왔기에 신교의 근면성 강조는 특이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한국에서는 일을 천한 것으로 여겼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일은 노예가 하는 것, 천한 계급이 하는 것으로 여겼다. 유럽만 해도 상공업에 종사하면 귀족의 신분을 잃었고, 불결한 일은 천한 것으로 여겨졌다.

일에 대한 태도와 근면성

일을 천시한 것은 일부 특권층일 뿐이고 오히려 하층민에게는 근면을 강요하였으므로 이 시대에 근면성이 경시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수도 있다. 또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의 선진국에도 일에 대한 사회적 위계는 존재한다. 일에 대한 태도는 단순히 근면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가난한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편견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실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저소득국 국민들은 고소득국 국민들보다 일을 더 중요시한다.

일과 여가의 상대적 중요성

문화인가 구조인가

근면성과 빈곤의 관계는 오래 동안 사회과학에서 다뤄져온 문제이다. 크게 보면 근면하지 못한 문화가 빈곤의 원인이라는 입장과 구조적으로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 대립해왔는데 뒤에서 제 3의 입장에 대해 공부할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태도

이슬람 세계에서는 신성모독에 이용될 것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인쇄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폐쇄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아랍어를 쓰는 사람은 2억명에 달하지만 매년 아랍어로 번역되는 책은 약 330권에 불과하다. 단지 1200만 명만 사용하는 그리스어로는 이보다 5배나 많은 숫자의 책이 매년 번역된다.

어떤 학자들은 중국과 아랍 세계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배타적이고 그 때문에 서구에 비해 뒤쳐졌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태도는 실제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에 있어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이슬람 세계나 중국이 서유럽에 비해 혁신적이지 못하다는 식의 인종적, 문화적 편견은 경계해야 한다.

서양의 정신적 뿌리인 고대 그리스, 로마는 철학과 과학이 발달했으나 상류층은 자신들의 지식을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무관심했다. 반면 중세까지는 유럽에 비해 중국과 이슬람 세계가 더 혁신적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배척되는 일은 근대, 현대의 선진국에서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영국은 가로등을 가장 먼저 설치했으면서 미국과 독일이 가로등을 전기로 바꾼 후에도 계속 가스 조명을 사용했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팩스를 사용하고 있고 다른 선진국들이 NFC 결제가 일반화된 후에도 여전히 한국은 마그네틱, IC 카드의 사용 비율이 높다. 트랜지스터는 미국에서 발명되었지만 미국 기업들이 미온적이었기에 대량 생산은 일본에서 이뤄졌다.

더 자세한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태도는 바로 뒤에 나올 맥클로스키의 주장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이 주제는 기술혁신의 경제학 수업에서도 깊이 다뤄진다.

중국의 발명품들
종이(한나라 시대), 화룡경(1403)에 소개된 “신화비아”, 목판으로 인쇄된 금강경(868)

이븐 시나의 “의학의 법전” 페르시아어 판본
11세기 씌여진 이븐 시나의 책은 유럽에 번역되어 600년 간 교과서로 쓰였다. 이븐 시나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유명한 의사인 갈레노스와 히포크라테스의 지식을 집대성하고 자신의 임상경험을 통합하였다.
By Coffeetalkh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1906621

중세 이슬람 세계의 병원 출처
비마르스탄(Bimaristan)은 중세 이슬람의 병원을 일컫는다. 유럽 병원은 근대까지도 지저분하고 환자를 격리하는데 초점을 맞춘데 반해 이슬람 세계는 중세에도 청결하고 좋은 환경을 통해 환자의 회복을 도왔다. (좌상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시리아 알레포의 아르군 병원의 표지석, 중세 이슬람 병원을 묘사한 그림, 아르군 병원의 중정, 12세기 설립된 다마스커스 병원 (가운데) 13세기 이슬람 의학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유럽 서적에 등장하는 삽화. 이슬람 세계는 인물 묘사에 부정적이어서 이러한 그림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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