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이란 무엇인가?
숙련(skill)은 일상 속에서 보통의 경우 목적에 효과적인 일련의 조정된 행동을 위한 능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테니스에서 서브를 넣는 능력, 목공 능력, 운전 능력,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능력, 선형계획법을 푸는 능력 등이 이에 해당한다.
숙련의 특성
숙련은 자동적이고 순차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는 능력으로서 컴퓨터 프로그램과도 비슷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에 숙련된다는 것은 그 일의 세세한 부분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자동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은 긴장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혹은 자동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숙련된 행위는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법칙들에 의해 이뤄진다. 수영선수는 폐에 얼마나 많은 공기를 남기느냐에 따라서 성과가 결정되는데 대부분의 수영선수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채로 무의식 중에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암묵성과 숙련
명시적 지식과 숙련
모든 행위가 글로 표현되고, 그것을 암기할 수 있다고 해서 꼭 성공적으로 과업을 완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서 비행기 조종사들이 해야 할 일은 모두 매뉴얼에 적혀 있지만 그것을 단순히 외운다고 해서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매뉴얼에 적혀 있는 항목들을 통합하고 연결시킬 줄 알아야만 비행기를 조정할 수 있는데 이런 것 역시 암묵적인 지식이다.
암묵성의 정도는 기술이나 지식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목공보다는 암묵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암묵성을 만들어 내는 세 가지 한계
- 시간의 한계: 피아노를 배운다고 하자. 매우 천천히 모든 음을 정확히 누르도록 지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행동을 빨리 할 수는 없다. 빨리 치는 것은 단순한 언어적 지시 뿐 아니라 오랜 숙련이 필요하다.
- 지식의 인과적 깊이: 시행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매우 복잡한 일을 할 때 인간은 세세한 부분까지 의식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만 이해하고 나머지는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이뤄진 숙련에 의해 행한다.
- 결합능력의 한계: 세세한 부분에 집중하게 되면 전체적인 패턴을 놓치게 되고 전체적인 패턴에 집중하게 되면 세세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숙련과 선택
숙련을 발휘할 때에는 항상 선택이 포함되어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택권을 가진다. 하지만 이 때 선택은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의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운전하는 사람은 항상 핸들을 얼마나 꺾을지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지만 의식적으로 이러한 선택지들을 생각하여 운전을 하지는 않는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는 것만 의식적이지 나머지 조작은 거의 무의식 중에 행한다.
선택과 능력 구분의 모호함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선택과 능력을 분리한다. 능력은 함수의 모양이고 선택은 그 함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의 양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항상 선택은 의식적인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선택과 능력이 분리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선택은 자동적으로 행해지고 그것은 사실 능력의 일부분이다.
의식적 선택과 숙련
숙련과 선택의 관계는 때로는 복잡하다. 어떤 사람이 자동차 운전을 할 때 사거리에서 직진, 좌회전, 우회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 이 때 대부분의 경우는 늘 출근을 하던 좌회전을 한다. 이 선택은 거의 무의식 중에 행해진다. 하지만 어떨 때에는 좌회전을 하고 보니 오늘이 토요일일 수도 있다. 어떨 때는 토요일이라 놀러가기 위해 의식적으로 우회전을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숙련을 가진 사람이라도 의식적으로 선택하기 마련이다.
환경이 변했을 경우, 혹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더 나은 선택을 의식적으로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의식적인 선택이 때로는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또한 의식적인 선택을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따라서 의식적인 선택과 자동 선택은 상충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적화 과정으로서의 숙련?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의식적인 선택과 자동 선택의 장단점을 비교하여 최적의 선택을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최적화는 불가능하다. 인간이 자동 선택을 하는 이유가 인간이 제한적으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제한적으로 합리적이라 자동 선택에 의존하는 인간이 어떻게 합리적으로 의식적인 선택과 자동 선택 사이에서 합리적으로 최적화를 할 수 있는가?
프리드만의 반론
신고전학파의 합리성과 최적화 도구에 대해서는 일찍이 현실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1960년대에도 이 문제로 인한 논쟁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 대표적인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인 프리드만은 도구주의적 관점에서 신고전학파의 합리성과 최적화 가정을 옹호하였다.
당구 선수의 예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에게 당구 선수가 다음 공을 어떻게 칠 것인지 묻는다면 물리 법칙을 이용하여 최적의 해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당구 선수는 물리 법칙에 대해서 전혀 모를 것이다. 선수에게 당구를 어떻게 치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공과 공이 갈 길을 잘 생각해서 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당구 선수의 행위를 물리적 법칙으로 설명하는 것은 분명히 현실과 동떨어진 일이다.
하지만 당구 선수는 물리 법칙을 모르더라도 물리 법칙으로 당구를 치는 것과 동일하게 당구를 칠 것이다. 당구 선수는 오랜 연습으로 무의식적으로 물리 법칙과 동일하게 당구를 치는 것이다. 따라서 당구 선수의 행위를 물리 법칙으로 설명하는 것은 도구주의적 입장에서 타당하다.
마찬가지로 기업가는 한계 비용이 얼마인지, 생산성이 얼마인지 정확하게 계산하지는 않는다. 기업가에게 생산량을 어떻게 결정하냐고 물어본다면 감에 따라 결정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업가의 결정은 오랜 경험을 통해 나오는 것으로 무의식 중에 한계 비용과 한계 수입이 일치하는 점에서 결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숙련을 거친 장인, 운동 선수, 기업가의 행동은 상당히 최적화에 가까울 수 있고, 무의식 중에 최적화를 한다고 가정해도 큰 문제는 없는 것이다.
도구주의 vs. 과학적 실재론
진화경제학자들은 이와 같은 가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숙련된 직업인이 최적화와 비슷하게 행동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신고전학파가 그것을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로 설명하는 데 반해 진화론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선택의 결과, 다시 말해서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설명력과 복잡성
만일 두 입장 간에 결과론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 도구주의자들은 신고전학파의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것을 진짜 사회과학이라고 할 수 없을지라도 실용적 목적에서라면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도 신고전학파의 가정에는 약점이 있다. 숙련의 본질은 최적화가 아니다. 한 사람이 숙련되어 있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에 비해 그 일을 잘 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은 그 일을 잘 하고, 어떤 사람은 그보다는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보다 못한다. 따라서 그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이 같은 행위, 그것도 최적화된 행위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상황이 고정되어 있다면 숙련을 통해 최적화된 행동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매우 복잡하고 한 사람이 인식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빠르게 변화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숙련된 기업가일지라도 늘 최적화에 가까운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실재와 맞지 않을 뿐더러 설명력에서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설명력의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설명하려 하는가?”에 달려 있다. 복잡하지 않고 빠르게 변화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의 경제 활동이라면 최적화는 충분한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환경 속에서 경제 활동의 변화, 특히 기술의 변화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낮다는 것이 진화경제학자들의 생각이다.
숙련은 학습의 과정
당구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당구를 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고, 선수들도 늘 더 좋은 경기를 위해 연습을 하고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늘 새로운 기술과 경영기법을 탐색해야 한다.
신고전학파의 가정은 이러한 학습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