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한 찬양과 한국에 대한 멸시
많은 서양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고는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남겼다. 이는 당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 과의 비교로 나타났다.
미국의 언론인인 조지 캐넌의 글들을 보자.
조지 캐넌
(조선인은) 일본 봉건제의 남성적 기개가 부족하고 무기력하며 고집불통이다. 일본인에 비해 크고 건장하며 잘생겼으나 무관심하고 유약하다.
조지 캐넌 "나태한 나라 조선" 중에서 (1905)
몸도 웃도 불결하고 아둔하며, 매우 무식하고 선천적으로 게으르다.
조지 캐넌이 Out look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인은 본래 일본인 또는 중국인과 같은 수준에서 사물을 파악할 능력이 없다. 만약 사물에 제대로 보는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패했기 때문에 자력으로 훌륭한 사회를 만들고 지켜나갈 수 없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인종적 결함과 낡고 뒤떨어진 정치·사회제도 탓에 외부로부터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는 후진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조지 캐넌이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일본에서 한국으로 여행한 여행자로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 나라의 청결함, 질서, 산업, 전반적인 번영과 또 다른 나라의 추잡함, 문란한 풍속, 게으름, 그리고 전반적인 고통과 파멸의 엄청난 대조였습니다. (중략)
동양 사상 최초로 한 아시아의 국가가 다른 아시아 국가를 변화시키고 문명화하기 위해 진지하고 결연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지 캐넌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과 친했고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물론 루즈벨트는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한국이란 극동의 모든 나라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가장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의 나라이며, 한국 민족은 가장 문명이 뒤진 미개한 인종이다. 한국인은 자치에 전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반면 일본은 입헌 정치의 나라이며 일본 민중은 지성과 활력, 활기에 넘치는 문명 국민이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시각이 독특한 것은 아니었고 당시 유행하는 제국주의적 시각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미국의 일본, 한국 정책에도 영향을 주었다.
물론 오늘 날 조지 캐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이유는 없다.
- 조지 캐넌은 한국인의 인종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으나 오늘 날 한국인에 대한 세계인의 평가는 완전히 바뀌었다.
- 한국이 근대화에 뒤쳐진 것이나 정부가 부패한 것은 인종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른 여러 문제들이 원인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현상이 한국인의 관습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이렇게 복합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자신의 주장에 별다른 근거를 대고 있지는 않다. 이는 조지 캐넌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많은 서구 지식인들의 공통적 문제다.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적 증거와 경쟁 이론 검토의 중요성을 배웠으니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서양인들의 일본에 대한 멸시
그렇다고 서양인들이 일본인을 칭찬만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에 대해서도 전형적인 서구 우월주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드러낸 경우는 많았다. 문화에 대한 관찰이 얼마나 주관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1881년 한 서구인
일본인들은 매사가 즐겁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종족이라서 많은 것을 성취할 것 같지 않다.
1915년 한 서구인
일본인들이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치 매우 태평한, 시간은 아무래도 좋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런 사실에 대해 몇몇 관리자들과 얘기해 보면 그들은 국민성이 변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깊은 교류와 시각의 변화
루즈벨트는 조선(대한제국)에 와보지도 않고 남의 말만 듣고는 조선에 대한 생각을 굳혔다. 조선을 방문한 많은 서양인들도 단기간 체류 경험을 토대로 인상비평을 남겼다. 하지만 조선에 오래 머문 서양인들 중에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경우도 많다.
윌리엄 샌즈는 도쿄에 2년간 머물다가 조선 공사관으로 부임한 사람이었다. 양국을 오래 관찰한 사람인 것이다.
윌리엄 샌즈
일본인은 예의바르고 질서 있는 국민이기는 하나 다른 사람을 기죽이는 습관이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매섭고 빠르게 주먹질하며 분개하는 사람들이다. 조선인보다 더 다스리기 쉬운 백성은 없다. 이들은 절망적으로 학대받지 않는 한 늘 평화롭다. 비겁하다는 말도 옳지 않다. 1866년과 1871년 프랑스와 미국이 침입했을 때 수병들에 항거한 사람들은 ‘호랑이를 때려잡는’ 조선인들이었고, 훌륭한 자질을 가진 농민들이었다. 일관되고 정직한 통치만 이루어졌다면 조선 사람들은 훌륭한 민족으로 육성되었을 것이다.
영국 기자 프레드릭 맥킨지
조선인들은 친절하고 정직하며 사랑받아야 할 기질을 갖고 있었다. 일본은 조선인을 ‘열등한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능력은 과대평가하는 반면 조선인은 과소평가했다. 조선보다 더 열등한 민족이 4000년 역사를 가진 민족을 동화시키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는 조선인 청년 여행 가이드와 우정을 나누며 조선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당초 일본의 주장에 따라 조선이 정신적으로 정체되어 있다고 믿었던 그는 조선을 둘러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
조선인들은 머리가 명석하다. 이들이 동면에서 깨어나면 독창적 탐구심으로 불타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