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효율적 제도가 채택될 수 없을까?
🧍♂️집단행동의 문제
어떠한 행동을 집단적으로 하면 모두가 이익을 보는 상황에서, 그 행동을 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면 어떤 한 사람도 나서지 않기 때문에 집단행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문제의 해결방법은 모두가 동일하게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조정 자체가 많은 비용이 들고 무임승차의 여지가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조정 대상이 다수일수록, 물리적으로 산개(散開)해 있을 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가 약할수록 조정은 어려워진다.
실제 전 국민이 모여서 함께 제도 개선에 대해 협의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 약속 이행의 문제
만일 거래 당사자 두 명이 거래를 하는데 한 사람이 먼저 무엇을 주고 다른 한 사람이 나중에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거래를 한다면 항상 약속 이행의 문제 발생 한다. 예를 들어 고용주와 고용자, 대부자와 채무자 등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실제로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모든 거래에는 시간 차가 존재한다.
법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국가가 약속의 이행을 강제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크지 않다. 하지만 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강제해 줄 제3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서 독재권력이 존재하는 국가가 있을 때 독재재가 국민들의 투자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투자자에게 많은 혜택이 가도록 제도를 바꾸겠다고 발표했다고 하자. 이러한 정책은 국민들은 소득이 높아지고 독재자는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 있으므로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다. 하지만 약속 이행을 강제하는 제 3자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독재자가 나중에 이 약속을 지킬 이유가 없기 때문에 국민들은 독재자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독재자가 상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고 시민들에게 권력을 양도하기로 했을 때에도 이 역시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 볼 수 없다. 일단 권력을 양도받게 되면 시민들이 독재자를 보호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 독재자에게 혹은 권력 집단에게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도록 종용하거나 협의하는 일은 많았지만 성공적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 정치적 패배에 대한 두려움
권력집단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속성 또한 비효율성의 원천이다. 권력은 소득, 특권, 명예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이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들에게 투자의 자유를 준다면 큰 이득이 생길 것이다. 시민이 이득을 본다면 세금이 늘어나므로 권력집단에게도 유리하지만 시민들의 재산이 많아진다면 이들이 정치권력을 가지게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권력집단은 자신에게 대항하는 세력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비효율적인 제도를 택할 수 있다.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발전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크다.
[!아프리카의 농산물 유통 독점]
가나, 잠비아, 나이지리아의 경우 국가가 농산물의 유통을 독점하고 있다. 국가는 농산물의 가격을 국제 시세보다 낮게 유지하고 높은 세금을 뗀 후에 국제 시세와 비슷한 가격에 판매한다. 이렇게 하면 세금을 통해 권력집단이 이익을 거둘 수 있을 뿐 아니라, 농산물 가격을 낮게 유지하여 권력집단에게 가장 위협적인 도시민들의 호감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독재권력이 특권층에게만 혜택을 주어 충성하도록 하고,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억압하는 일은 흔하게 관찰되는데 북한도 그러한 예 중 하나다.
좋은 경제제도가 생성될 수 있는 상황
결국 경제 제도는 가장 효율적인 것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집단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경제 제도는 권력의 분배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경제제도가 형성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 권력집단의 권력 행사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좋은 제도, 다시 말해서 재산권 보호가 잘 성립될 수 있다.
- 만일 권력집단이 착취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많지 않다면 비교적 잘 재산권이 보호될 수 있다.
식민지 국가의 제도
권력이 잘 분산되어 있다면 재산권이 잘 보호될 수 있다는 얘기는 왜 유럽인들이 정착한 식민지들이 좋은 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인들이 정착한 곳에서는 비교적 권력이 분산되어 있었지만, 유럽인들이 소수였던 곳에서는 유럽인들에게 정치권력이 완전히 집중되었다.
착취할 경제적 이득이 적을수록 재산권이 보호될 수 있다는 것도 역시 설명력을 지닌다. 유럽인들이 정착한 곳은 원래 가난했던 지역이고 따라서 착취할만한 이득이 별로 없었던 데 반해 유럽인들이 정착한 곳은 착취할만한 것이 많은 곳이었다.
[!정치권력과 경제제도의 관계에 대한 예]-
🇺🇸 🇲🇽 미국과 멕시코의 금융시장 차이
금융시장은 돈이 남는 곳에서 필요한 곳(효율적인 곳)으로 중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잘 작동해야만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19세기 미국 경제사가들은 금융시장의 발달이 당시 미국 경제의 급속한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1818년에 미국에는 338개의 은행이 있었는데 1860년에는 1579개의 은행이 있었고 1914년에는 은행이 무려 27864개나 존재하였다. 하지만 멕시코에는 겨우 42개의 은행만 있었고 그 중 두 개의 은행이 전체 은행 자산 중 60%를 독점하였다.
미국도 처음에는 주정부가 은행업을 규제하였고 규제된 시장에서는 일부 엘리트들이 이익을 독점하였다. 하지만 투표권이 확대됨에 따라 점차 주정부들은 은행업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였다. 주정부 사이의 경쟁은 규제 철폐를 가속화하였다. 반면 멕시코는 오랜 기간 독재 정부 하에 있었기 때문에 은행에 대한 규제가 계속되었고 그 결과 금융시장의 효율성이 크게 저하되었다.
🏙️🏰 서유럽의 농노제 소멸과 동유럽의 재판 농노제
15세기 경 서유럽에서 농노제가 거의 소멸되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 이유를 14세기의 흑사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1 흑사병 때문에 인구가 대폭 감소하면서 농노들의 지주에 대한 협상력이 강화되었고 그 덕분에 농노제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흑사병을 겪은 것은 동유럽이나 서유럽이나 마찬가지인데 동유럽은 다시 농노제로 돌아간 반면 서유럽은 점점 더 시장 체제로 나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유력한 이유 두 가지가 지적된다.
- 첫번째는 서유럽의 경우 대서양 무역 등의 발달로 상인 계층의 힘이 점점 더 커졌다는 것이다.
- 두번째는 서유럽이 농업이 더 집단 생산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집단행동의 문제 해결 용이했다는 것이다.
정치권력의 원천
지금까지 정치권력의 분배상태가 경제제도에 큰 영향을 주고, 그렇게 결정된 제도가 경제적 성과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정치권력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정치 권력을 두 가지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 📜 법적인 정치권력
- 헌법이나 관습법, 군 통수권 등의 정치제도가 특정인, 특정 계층에 법적인 정치권력을 부여한다.
- 🕴️ 사실상의 정치권력
- 집단행동의 문제가 해결되기만 한다면 법적인 힘이 없는 사람들도 폭동, 혁명, 시위 등을 통해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법적으로 권력이 없더라도 부유한 계층이나 사병을 거느린 세력 등은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법적인 정치권력은 정치제도가, 사실상의 정치권력은 경제적 자원배분이나 집단행동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법적이든, 사실상이든 정치권력을 지닌 자는 정치제도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데 이 권한은 당연히 자신의 정치권력을 강화하는데 사용할 것이다.
정치제도와 정치권력의 상호작용
히틀러는는 처음에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되었다. 따라서 히틀러는 정치 제도에 의해 법적인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치제도를 수정하였고 결국은 법적인, 그리고 사실상의 정치권력을 완전히 손에 넣게 되었다.
박정희는 법적인 권력을 지닌 정부를 사실상의 권력인 군을 이용하여 전복하였다. 법적인 정치권력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제로의 개헌한 후 직접 선거에서 신승하여 법적인 정치권력을 얻었다. 하지만 1972년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확대한 유신헌법을 통과시켜서 완전히 독재의 길로 들어선다.
이렇게 사실상의 정치 권력을 가진 세력은 정치 제도를 변경함으로써 법적인 권력을 독차지하고자 시도한다. 물론 그러한 시도가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하여
지금까지 설명한 논리구조가 상당히 복잡해보인다. 다음 절에서 한 눈에 정리해보자.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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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보았듯 흑사병 이전에도 농노제는 이미 완화되고 있었고, 흑사병 직전에는 서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사라졌거나 명목 상으로만 남아 있었다. 흑사병이 결정타를 날렸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 흑사병이 농노제 폐지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