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 분석 결과의 문제
아세모글루가 제시한 그래프들을 자세히 보면 상관관계의 대부분을 미국, 호주, 뉴질랜드, 홍콩, 싱가포르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 결과의 해석에 주의해야 한다.
인도의 경우 상당히 예외적 케이스로 등장하는데 재산권 보호는 상당히 잘 되면서, 과거에는 소득이 높았지만 현재의 소득은 낮은 케이스이다. 즉, 아세모글루의 주장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그런데 인도는 거대한 아대륙으로서 수 많은 문화권과 언어가 공존하는 곳인데 이 문제를 단지 우연에 의한 한 나라의 예외로 보기는 좀 애매한 면이 있다. 인구 수십-수백만에 불과한 국가들과 인도를 같은 가중치로 보기에는…
이러한 문제들은 통계의 강건성을 보기 위한 테스트를 요함과 동시에 경쟁 이론들에 대한 좀 더 폭넓은 검토를 요한다. 실제 몇몇 실증 연구들은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보고하고 있다.
재산권은 근대의 산물인가?
아세모글루는 국가나 정치적 엘리트들에 의한 약탈로부터 보호 정도를 중요시했고 유럽 근대의 경제 성장과 산업혁명도 재산권 보호의 결과로 설명한다. 왕에 의해 약탈이 횡행하던 중세에서 왕이 함부로 상인들의 재산을 어쩌지 못하게 되는 근대로의 이행 계기로 명예 혁명을 들고 있다.
그런데 중세 잉글랜드 국왕의 정치, 경제적 권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명예 혁명 직전 영국 왕이 사용한 지출은 GDP의 3%도 되지 않았는데 이는 현대 고소득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미국이나 한국의 정부 비중이 적은 편인데 20%가 넘고 프랑스 등 유럽 국가 중에는 40%가 넘는 경우도 있다.
영국의 사유 재산권은 최소한 13세기(마그나카르타) 이전부터 법과 관습으로 확립되었다. 이후 법이 점차 정교화되기는 하였으나 점진적인 것이었지 17세기나 18세기에 혁명적 변화가 온 것은 아니다.
명예 혁명 이후에도 부정부패로 인한 재산권 침해, 일부 특권층을 위한 보호무역, 보조금은 늘 존재했다. 영국이 본격적으로 자유무역을 확립하고 주식회사를 허용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인 19세기 중반이었다.
North Gap
재산권 제도의 확립을 산업혁명의 근본 원인으로 본 아세모글루의 견해는 사실 독창적인 것은 아니고 또 한 명의 유명 경제학자인 더글라스 노스로부터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영국의 재산권은 13세기 이전(10세기나 11세기)부터 정립되기 시작했고 자유로운 무역과 주식회사 제도는 19세기 말, 그리고 산업혁명은 18세기 말이다.
인과관계를 논하기에는 너무나도 그 차이가 크고,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이러한 시간의 차이를 맥클로스키는 North Gap이라고 부른다.
유럽 국왕들의 실상
중세부터 근세까지 유럽의 왕들은 늘 부자들에게 돈을 빌렸으며 늘 빚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중세의 왕들은 권력이 미약했으며 중세 말 이후에는 금융업과 상업이 발달하고 용병이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이미 왕들은 시장에 의존하여야 했다.
근세 유럽 최고의 권력자였던 카를 5세는 당대 최고의 은행가였던 푸거에게 막대한 빚을 얻어 썼다. 유럽에는 한 번도 중국이나 한국과 같은 전제군주제가 시행된 적이 없고 국왕이 가장 부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때로는 권력 유지와 확대를 위해 상업 자본가와 결탁해야 했다.
그렇다고 교회가 엄청난 착취를 한 것도 아니었다. 이집트의 파라오도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급여를 지급했듯이1 중세 유럽의 성당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시민들이 열성적으로 헌금을 했으나 교회는 늘 돈이 부족했다. 중세 유럽 성당을 짓는데 수백년이 걸린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사유 재산은 도처에 존재했다.
노스나 아세모글루는 때때로 중세 유럽에는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공유지의 비극이다. 물론 앞서 얘기했듯이 중세 유럽에는 공유지의 비극이 벌어지지 않았다. 중세 농민들은 실질적으로 토지를 소유하고 거래하였고, 공유지가 있더라도 관습에 의해 자율적으로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 외에 고대 이집트, 고대 로마, 고대 중국, 고대 인도에서도 사유 재산권 개념이 있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발달해 있었다. 기원전 18세기에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에서 볼 수 있듯 인류는 오래 전부터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정교한 장치들을 만들어 왔다.

함무라비 법전
기원전 18세기에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에 의해 만들어졌고, 지금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은 무식해보이는 원리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 내용은 대단히 정교하다.
함무라비 법전 9조
누군가 물품을 잃어버렸는데 다른 이에게서 이것을 찾았을 경우, 그 도난당한 물품을 소유한 자가 “상인이 그것을 내게 팔았다. 나는 증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대금을 지불했다.” 라고 말할 경우, 그 물품의 원소유주는 “그 물품이 나의 소유임을 증명할 사람을 데려오겠다.” 라고 말한 뒤, 그 물품을 판매한 상인을 법원에 출두시킨다. 원소유주 또한 해당 물품의 소유를 증명할 증인을 법원에 출두시킨다. 판관은 양자의 증언을 듣고 도난당한 물품을 구입한 자에게는 그 값을 지불했음을, 그 물품의 원 소유주는 해당 물품이 본래 자신의 소유였으나 도난당한 것임을 신에게 맹세하게 한다. 만약 상인이 도둑이었음이 드러날 경우 그를 죽인다. 물품의 원 소유주는 해당 물품을 돌려받으며, 해당 물품을 구입한 자는 상인으로부터 물건의 값을 돌려받는다.
[!최초의 건축법]-
함무라비 법전에는 인류 최초의 건축법이 등장한다.
함무라비 법전 중에서
229조 - 건설업자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집이 무너져 집주인이 죽을 경우 건설업자를 사형에 처한다.
230조 - 만일 집주인의 아들이 죽었으면 건설업자의 아들을 사형에 처한다.
231조 - 만일 집주인의 노예가 죽었으면 건설업자가 집주인에게 노예를 주어야 한다.
232조 - 만일 재산상에 피해가 있을 경우 파괴된 것을 갈아주어야 한다. 건설업자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집이 무너진 경우 자비를 들여서 새로 지어주어야 한다.자유 시장에 대한 믿음과 달리 실제 시장은 규제가 없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보의 비대칭성, 제한적으로 합리적인 시장 참가자, 기술적 조정의 필요성 등 때문이다.
실제 오늘 날의 건축법과 시행령은 훨씬 더 세세한 규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층간 소음을 막기 위한 바닥의 구조, 단열재 종류 별 두께와 시공 방법 등 세세한 규정을 가지고 있다.
중세 길드가 생산품에 대한 세세한 규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정체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그들이 한국의 건축법을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이것은 경쟁 제한을 위해서가 아니라 품질 유지와 기술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이미 기원전 18세기에 인류는 시장 경제를 원활히 하기 위한 재산권에 더해서 시장 경제의 폐해를 막기 위한 장치까지 갖췄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국의 예는 적절한가?
아세모글루가 가장 중요한 예로 드는 것이 남북한의 차이인데 남한 사례가 꼭 제도의 중요성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한국에서는 재산권을 무시하는 일들도 많이 벌어졌다. 독재자는 종종 재산을 강탈하기도 했고, 금융은 완전히 국가가 컨트롤했다. 현재도 한국의 토지 수용은 매우 쉽게 진행되는 편이다.
남한은 민주주의 등 서구식 제도 덕분에 성장한 것이 아니라 성장한 후에야 비로소 민주주의로 이행하였다. 아세모글루는 한국의 독재 정권 시절에 있었던 시위 등 몇몇 견제들의 예를 들지만 어느 독재 정권에도 반독재 운동은 있다.
반면 시민들의 봉기로 독재 정권이 무너진 아랍권은(아랍의 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더 불안해졌고 시민들의 고통은 더 커졌다.
후발국에게는 정말 기회가 없는가?
경제제도, 정치제도, 그리고 경제적 성과 사이에 강한 순환적 인과관계는 후발국 경제발전에 대해 숙명론, 비관론으로 연결된다.
후발국에게 제도의 저주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극복 불가능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재산권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재산권은 경제발전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인신매매, 강제노동, 사적제재, 군벌들의 내전이 횡행하는 국가에서 경제가 발전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재산권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경제 발전은 제한적이다. 재산권 확립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현대 고소득 국가들 사이에도 경제 제도에는 큰 차이가 발견된다. 예를 들어 유럽 국가들은 영미에 비해 생산수단이나 토지2의 공공성을 강조하곤 한다. 제도와 경제 발전 사이의 관계가 단선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마지막으로 검토한 논점들에 대해서는 바로 이어지는 장에서 다룬다.마지막 논점과 관련되어 제도가 단순히 선택의 범위를 제한하는 역할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비판이 존재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 있다. 뒤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살펴보자.
점점 흥미진진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