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서양에서는 강자에 의한 약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강했다. 흔히 이러한 경향을 다윈의 영향으로 보지만 사회진화론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스펜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이전에 이미 사회진화론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1)
아담 스미스와 그 후예들의 자유 시장주의 이데올로기, 맬서스의 인구론에서도 그러한 시각을 찾을 수 있다.
이들에게 가난은 나태함, 연약함의 결과일 뿐이었다. 19세기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시인 중 한 명인 보들레르의 작품들은 당시에도 문제작으로 여겨졌지만 이 산문시는 당시 가난에 대한 시각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
보들레르, <가난뱅이들을 때려눕히자!> 중에서
내가 어느 술집으로 들어가려던 참에, 걸인 하나가 나에게 모자를 내밀었다. (중략)
어디든지 나를 따라다니는 착한 천사(중략)가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다, “남과 평등함을 증명하는 자만이 남과 평등할 자이며,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자만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느니라.”나는 지체 없이 내 눈앞의 거지에게 덤벼들었다. 단 한 번의 주먹질로 그의 눈을 들이박았더니, 그게 한순간에 공처럼 부풀었다. 그의 이빨 두 개를 부러뜨리느라고 내 손톱 하나가 깨졌는데, 나는 태생이 연약하고 주먹질 연습도 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이늙은이를 당장에 때려눕힐 만큼 내가 충분히 강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던지라, 한 손으로 그의 옷깃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멱살을 움켜쥐어, 그의 머리를 벽에다 세차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중략)
오, 기적이여! 오, 제 이론의 탁월함을 확인하는 철학자의 기쁨이여! 갑자기 나는 저 해묵은 해골이 몸을 뒤집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보았으며, 그토록 형편없이 망가진 기계 속에 들어 있으리라곤 상상할 수도 없던 정력으로, 그리고 나에게는 좋은 전조라고 여겨지는 증오의 시선을 들고, 이 늙어빠진 불한당은 나에게 덤벼들어 내 두 눈을 멍들게 하고, 내 이빨 네 개를 부러뜨리고, 나뭇가지로 나를 횟가루가 되도록 후려팼다. 내 막강한 치료술로, 나는 그에게 이렇듯 긍지와 생명을 되돌려준 것이다. (중략)
“여보시오. 당신은 나와 평등한 인간이오! 부디 나에게 내 돈지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영광을 베풀어주시고, 또한 당신이 정말로 박애주의자라면, 당신의 동업자들이 당신에게 적선을 바랄 때, 내가 당신의 등 위에서 그토록 힘들여 시도했던 이론을 그들 모두에게 적용할 것을 잊지 마시오.”
그는 자기가 내 이론을 이해했으며, 내 권고를 따르겠노라고 나에게 확실히 맹세하였다.
이와 같은 사고 방식은 나치즘으로 이어졌고 인류 역사 상 최악의 살육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 중에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지배해야 하고 약한자와 짝을 지어서는 안된다. 오직 약한 자만이 이러한 원칙을 잔인하다고 볼 것이다. 약한자는 천성이 연약하고 마음이 좁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원칙이 진화 과정에 작동하지 않는다면 유기체는 높은 단계로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몰락"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대사
(소련군이 베를린 근교까지 진격하여 베를린을 포격하자 일부 참모들은 민간인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들은 동정할 가치가 없어. 독일 국민은 약한 것으로 판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