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중에서

팡글로스는 형이상학적, 신학적 우주론을 강의하였다. 그는 다음 같은 사실을 멋지게 증명해 보였다. 즉 원인 없는 결과란 없으며, 우리의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며, 남작 각하의 성은 이 세계의 성 중에서 가장 멋진 성이며, 남작 부인은 가장 좋은 남작 부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증명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이란 가장 좋은 목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일례로 코는 안경을 얹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안경을 씁니다. 다리는 양말을 신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양말을 신습니다. 돌은 원래 성을 짓는 석재로 쓰이기 위해 생성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작 각하는 멋진 성을 소유하고 있지요. 왜냐하면 이 지방에서 제일 유력한 남작은 가장 좋은 성에 살아야 하니까요. 또 돼지는 식용으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년 내내 돼지고기를 먹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좋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볼테르는 라이프니츠로 대표되는 낙관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캉디드”라는 소설을 썼다. 이 책은 볼테르의 저작 중 가장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책의 줄거리는 팡글로스 교수에게 낙관주의를 배운 캉디드가 온갖 재난에 휩쓸리면서 겪는 고생담이다. 특히 서유럽 전체에 큰 충격을 준 리스본 대지진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라이프니츠는 볼테르보다 한 세대 전의 철학자인데 오늘날에는 뉴턴과 함께 미적분학의 발명자로 유명하지만 당대에는 합리론 철학의 거성이었다. 라이프니츠는 플라톤의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데카르트의 합리론, 스콜라 신학을 종합하여 “신을 믿는 수학자가 이성으로 만든 거대한 형이상학 체계”를 만들었다.

특히 볼테르가 비판한 낙관주의는 라이프니츠의 “최선의 세계 이론”이다. 라이프니츠는 “전지전능하고 완전히 선한 신”을 믿었지만 이 세상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질서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때 부딪힌 문제가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부터 난제였던 “악의 존재 문제”였다. 신은 전지전능하고 완전히 선한데 어째서 악이 존재할까?

악과 완전한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조화시킬 방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가능한 세계들 중 “가장 최선”이라고 보는 수 밖에 없다. 고통이나 악은 결국 선을 위한 것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불가피한 최소한의 악이라는 것이다. 신이 악을 직접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선을 위해 악의 존재를 일부 허용한 것이다

왜 최선의 세계에는 악이 반드시 존재해야 할까? 첫째, 악이 있어야 선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마치 불협화음이 있어야 협화음이 아름다운 것과 마찬가지다. 둘째, 악이 있어야 더 큰 선이 따라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질병이 있기 때문에 의술의 발전이 가능하다. 셋째,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졌기 때문에 도덕적 악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악도 없겠지만 자유의지가 없는 세계는 열등한 것이다.

이와 같이 라이프니츠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이성적으로 설명 가능하고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이나 재난도 신의 선한 목적 아래 일어나는 일이다.

볼테르는 흔히 라이프니츠를 비판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볼테르가 명확하게 라이프티츠를 언급한 것은 아니다. 라이프니츠와 그의 영향을 받은 형이상학적 낙관주의, 합리론 전체를 겨냥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볼테르의 비판은 사실 정교하거나 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볼테르는 리스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정서적, 실존적인 질문을 하게된 것으로 보인다. 이 엄청난 부조리 앞에서 고통과 악이 신의 조화라는 주장이 아무리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인들 대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볼테르에게 형이상학적 낙관주의는 공허하고 기만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중에서

팡글로스는 때때로 캉디드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최선의 세계에서는 모든 사건들이 연계되어 있네. 만일 자네가 퀴네공드 양을 사랑한 죄로 엉덩이를 발길로 차이면서 성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또 종교 재판을 받지 않았더라면, 또 걸어서 아메리카 대륙을 누비지 않았더라면, (중략) 자네는 여기서 설탕에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를 먹지 못했을 것 아닌가.”

그럴 때마다 캉디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마르크스의 선구자로서 볼테르]
볼테르는 관념을 비판하고 실천을 강조한다. 볼테르의 “밭을 갈아야 한다”는 선언은 마르크스의 “세계를 바꿔야 한다”를 좀 더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또한 볼테르는 형이상학적 낙관주의를 보수적 이데올로기로 보고 희화화하였다. 이는 마르크스가 제시한 이데올로기 비판, 즉 시대의 지배사상이 사실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음을 비판한 것과도 일맥 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