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산업 혁명
영국의 산업혁명에 대한 설명
영국의 산업혁명은 대서양 무역이라는 외재적(外在的) 요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서양 무역은 상인들의 사실상의 정치 권력을 키워주었고 이를 통해 상인들은 경제적으로는 재산권의 강화를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강화를 주장할 수 있었다.
일단 정치, 경제 제도가 상인들에게 유리하게 바뀐 후로는 자기 재강화 메커니즘을 통해 더 확실히 상인들의 경제, 정치 권력이 강화되었다.
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아니었을까?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영국보다 훨씬 앞서 신대륙을 개척했고 그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는데 왜 산업 혁명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났을까?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대서양 무역의 이익을 왕이 독점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왕권이 강화되어 절대왕정 시대가 도래하였다. 반면 영국에서는 대서양 무역을 왕실이 독점하지 못하고 상인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영국이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권력이 분점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작은 차이는 영국과 네덜란드를 유럽의 선진국으로 만든 반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뒤쳐진 지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초기의 작은 차이가 결국 정치, 경제 제도, 더 나아가서 경제발전에 있어 큰 차이를 낳았다.

펠리페 2세의 초상, Sofonisba Anguissola (1565)
카를 5세는 신성로마제국은 동생 페르디난트에게 스페인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물려주었다. 펠리페 2세 시절 스페인은 말 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 왕국이 되었다. 전 세계로 식민지를 확대하여 막대한 부를 쌓았고, 레판토 해전을 통해 당시 서지중해까지 위협하던 오스만 제국을 막아내어 유럽의 수호자로 추앙 받았다.

레판토 해전
레판토 해전을 그린 작자 미상의 기록화. 16세기 후반 작으로 추정된다. 레판토 해전은 당대 지중해 최강의 기독교 국가인 스페인과 베네치아의 연합을 바탕으로 교황청, 제노바, 성 요한 기사단 등이 포함된 연합군이었다. 그림에서도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의 사자, 제노바의 성 조지 십자가, 합스부르크의 독수리 등 연합 함대의 상징을 볼 수 있다. 레판토 해전 이후에도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의 여러 유럽 식민지들을 점령하였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중심지인 빈을 포위하기까지 했지만 레판토 해전은 점점 유럽을 향해 행창하던 오스만을 처음으로 멈춰 세운 전쟁으로 유럽에서는 큰 의미가 부여된 사건이었다.

펠리페 2세의 영토
카를5세 사후 합스부르크 제국은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으로 갈라졌지만 스페인의 펠리페 2세 영토만으로도 세계적인 대제국이었다. 유럽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인 밀라노와 저지대, 나폴리 왕국, 프랑슈콩테 지역 등 여전히 광대한 영토를 소유했지만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인도,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