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에 대한 전통적 견해

길드란?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 도시에 존재하던 상인과 장인의 조합이다. 길드는 해당 지역의 생산권, 상권을 독점하였다. 학자들이 공감하는 길드 정의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

  • 강제적 멤버쉽
  • 도제에 대한 공적인 승인과 규제
  • 노동에 대한 규제
  • 지역적 아이덴티티

다음의 요소들은 항상 존재하지는 않지만 상당 수의 길드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 카르텔
  • 생산물과 방법에 대한 세세한 규정
  • 구성원들에 대한 현금, 현물 지원

전통적으로 길드는 독점으로 인한 비효율성의 대명사였다. 미시경제학 시간에 배웠듯이 독점 시장에서는 높은 가격, 낮은 생산량으로 인해 자중손실이 발생한다. 또한 장인 길드들은 제품의 종류, 규격, 제조방법 등에 대한 세세한 규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정적 손실보다 훨씬 큰 문제는 동적인 손실이다. 경쟁에 제한되면 혁신할 유인이 사라진다. 제품에 대한 세세한 규정은 혁신의 여지가 없게 만든다.

결국 영국의 산업혁명은 길드가 장악하고 있는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시작되었다. 17세기 영국에서는 모직물 공업이 농촌으로 이동해서 모직물 길드의 영향력은 사실상 사라졌다. 영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 17세기에 이미 유럽 최대의 공업 수출국이었다. 반면 17세기 프랑스에서는 왕족의 수입원을 위해 길드 조직이 강화되었는데 전통적 견해에서는 이를 프랑스가 영국에 뒤쳐진 이유 중 하나로 본다.

전통적 견해에 대한 반례

길드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본 경제사학자들은 기존의 전통적 견해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사례들을 발견하였다.

  • 네덜란드 공화국이 그 어느 때보다 강성해지던 17세기 길드의 수가 증가하였다.
  • 17세기 영국의 성장률은 18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영국 길드의 쇠퇴는 18세기에나 일어난 일이다. 17세기는 런던에서 가장 창업이 활발히 일어나던 때다. 18세기에 길드 수는 감소하긴 했으나 시계나 마차와 같은 혁신적인 분야에서는 오히려 늘기도 했다.
  • 19세기까지 숙련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길드 혹은 비슷한 제도가 계속 운영 되었다. 리옹 실크 직공들이 그 예다.
  • 독일의 솔링엔(Solingen)은 식기 생산으로 유명했는데 프랑스, 독일 당국이 길드와 그 비슷한 것을 억눌렀고 그 결과 생산품의 질도 낮아지고 임금도 내려갔다.

길드에 대한 새로운 견해

최근 경제사학자들은 길드가 단순히 카르텔에 불과했다는 견해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경제학 연구가 깊어질수록 길드의 역할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무기도 튼튼해지고 있다.


🤝 거래비용의 감소

천 더미를 고를 때 일일이 검사하는 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특히 멀리 있는 상인이라면 이러한 어려움이 더욱 컸을 것이다. 이런 경우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한 시장 실패가 발생한다. 중세에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길드에 의한 도시 상표다. 14세기 플랑드르의 모직물, 슈바벤의 면직물의 높은 질은 이렇게 유지되었다.

중세 길드가 가진 상품에 대한 세세한 규정 또한 오늘날의 품질 마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것은 단순히 경쟁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길드 제품이라면 누구에게 사더라도 품질을 보증한다는 의미가 강했다.

피렌체 길드들의 문장
Armi delle arti fiorentine maggiori e minori (AS Firenze, Fondo Manoscritti, 471, c. 13, sec. XVIII) By http://www.san.beniculturali.it/web/san/dettaglio-oggetto-digitale?pid=san.dl.SAN:IMG-00003045,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6639306


📋 대리인 문제의 해결

신제도 경제학은 공장제가 발달하면서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집중적 계약으로서 기업이 탄생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주장은 15-17세기 공업 발전과 함께 길드가 폭증한 것과 배치된다. 이 패러독스는 당시 길드가 기업의 대체물로서 작동했다고 보면 쉽게 해결된다.

선대제 하에서 상인이나 장인은 수 많은 중간재 공급자들과 협업해야 했는데 기회주의적 행동의 여지가 많음을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길드는 강제력을 가진 중재자 역할을 하였다.

[!기업이론]-
기업이란 무엇인지, 왜 존재하는지를 논의하는 분야가 기업이론이다.

거래비용 이론은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로 인해 시장 거래에서 발생하는 거래비용이 위계조직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상회할 때 그 작업을 위계조직 내에서 해결하는데 그 위계조직이 기업이라고 본다.

팀생산 이론은 작업이 분리되지 않고 개개인의 성과 측정이 어려운 팀생산에서 대리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잔여생산분 청구권자가 필요하고 이것이 기업이라고 본다.

길드에 대한 새로운 견해는 길드가 원시 공업화(Proto-Industrialisation) 때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기업의 대체물로 기능했다고 본다.

거래비용이론, 팀생산 이론 등 기업이론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여기를 참조하라.


🎓 인적자본의 축적

길드에서 행해지는 도제식 교육은 19세기 이전까지는 가장 중요한 기술 교육 수단이었다.

장인의 일이라는 것이 일하면서 암묵적 지식을 체득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때 교육생은 교육도 안 시켜주고 허드렛 일만 시키고 돈도 잘 안준다던가 하는 계약 상 어려움에 처할 일이 많다. 반대로 장인은 기껏 훈련시킨 교육생과 함께 여러 비밀들을 다른 장인에게 뺏길 위험이 있다. 길드의 규칙은 제도적으로 암묵적 지식이 중요한 노동 시장에서 불완전 계약 문제를 해결해준다.

꽉 막혔을 것 같은 길드는 사실 열린 교육 시스템이었다. 중세의 도제들은 반드시 고향을 떠나서 다른 도시에서 교육을 받았고 교육 후에도 떠돌면서 정착할 곳을 찾았다. 타도시 수련 기간이 있어야 거주 자격을 주는 도시들도 있었다. 이와 같은 제도는 서유럽의 기술적 교류와 통합을 이끌었다.


❤️ 사회복지 시스템

길드는 기본적으로 직업 조합이었으나 사회복지 시스템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조합원 사망시 장례비나 유족의 생계비 지원, 은퇴한 회원의 공동 거주 공간 운영 등 실질적인 역할 외에도 조합원 간 연대와 책임 의식을 강조하고 종교적 후원을 통해 신앙활동과 도덕 교육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세 길드는 국가와 시장의 역할이 제한되어 있는 전통 사회에서 조합+보험+직업학교+사회복지재단의 역할을 한 것이다.


🗳️ 길드의 정치적 역할

중세 유럽은 흔히 경제적으로는 장원제, 정치적으로는 봉건제로 특징지워지는데 실제로는 시기적, 장소적으로 차이가 컸기에 중세 사회를 단순하게 도식화하기는 어렵다. 그 중에서도 장원제, 봉건제의 도식에서 가장 벗어나 있는 것은 황제와 왕, 영주, 주교로부터 자율성을 지킨 도시들의 존재이다.

중세 및 근세 유럽에서 도시의 자율성은 단순한 행정적 독립만이 아니라, 경제적 자치, 정치 참여, 군사적 방어력, 사회적 통제력을 포함하는 복합적 개념이었고 이 자율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있어 길드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길드와 도시의 자율성 그리고 도시 국가]
많은 도시에서 길드가 시의회 구성원을 배출했는데 특히 독일의 한자, 북이탈리아, 스위스의 도시에서는 길드가 실질적인 시 행정의 권력 주체였다. 부르주아의 이익을 대변하며, 영주나 교회 권력에 맞서 도시 공동체의 자율성을 방어하는 정치 집단 역할을 했던 것이다. 왕이나 황제, 주교들이 도시로부터 세금을 걷을 때, 길드는 징세 및 분배의 중개자 역할을 했다.

많은 도시에서는 길드별로 무장 편제를 갖춘 민병대를 조직했는데 이런 군사력은 도시가 외부 영주나 군대의 간섭에 스스로 맞설 수 있는 조건을 조성했다. 베네치아와 스위스의 도시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스스로가 강력한 정복 도시 국가로 발전하였다. 플랑드르와 홀란드에서는 길드가 중심이 되어 도시가 왕과 맞섰고 결국 네덜란드 독립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피렌체 길드의 예를 통해 실제 어떠한 길드들이 존재했는지, 이들 간의 정치적 계급은 어떻게 정해졌는지 살펴보자.

길드와 혁신에 대한 저항

종종 길드는 혁신이나 경쟁을 방해하려고 했으나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날에도 여러 이익 집단 혹은 정부가 혁신을 규제하려고 하니 이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오늘날 혁신에 대한 규제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니 길드의 그것도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길드는 혁신에 저항하는데 생각보다 무능력했다.

길드의 허가 없이 상공업을 해서 해코지를 당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반대로 길드 외의 상공업자들이 너무 많아져서 길드가 단속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 요청이 항상 완전히 성공적인 것도 아니었다.

길드와 경쟁, 혁신 제한의 사례들

  • 1373년 잉글랜드 옥스포드시에 서점이 너무 증가하자 길드는 당국에 대책을 요구했고 결국 등록된 서점 외에는 일정 금액 이하의 책만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 목판 인쇄술과 종이의 보급은 필사가, 플레잉카드 제작자, 양피지 제작자 등에게 피해를 주었지만 큰 저항 없이 전 유럽으로 보급되었다.
  • 필사가들이 구텐베르크 인쇄기의 도입을 방해했다는 흔적은 없으며, 그랬다고 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음이 확실하다. 필사가 중에는 스스로 인쇄기를 도입하여 출판업을 시작한 경우도 있었다.
  • 1551년 영국 의회는 의류 마름질에 사용되었던 기모기(gig-mill)의 사용을 금지시켰는데 실업에 대한 우려와 독점적인 길드의 반발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모기는 계속 사용되었다.
  • 1589년 영국의 목사인 윌리엄 리(William Lee)는 편물기를 개발했는데 편물공이 1분에 100코를 뜰 수 있었던데 비해 편물기는 1분에 1000코를 뜰 수 있었다. 윌리엄 리는 편물공들에 의해 쫓겨났는데 프랑스에서 왕실의 후원 하에 공장을 설립할 수 있었고 편물기는 계속 보급되었다.
  • 영국에서는 1638년 회전 직조기 (swivel-loom)의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사용이 확산되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길드가 혁신을 제한하기는 커녕 중세와 근세에 걸쳐 서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의 기원이 되는 중요한 혁신들이 일어났다.

[!송나라는 왜 시계를 발달시키지 못했나?]

송나라는 유럽보다 앞서서 정교한 기계식 시계를 제작하였다. 이는 수력을 이용했으므로 완전 기계식은 아니었으나 유럽의 시계도 수력으로부터 시작했으니 송나라는 유럽보다 앞선 시기에 정교한 손목 시계를 만들 기반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뒤늦게 시작한 유럽은 무게 추나 스프링, 태엽을 이용한 복잡한 시계까지 발전하였으나 송나라의 시계는 멈춰섰다.

왜 송나라의 시간은 멈췄을까? 이 질문은 이른바 니덤 퍼즐이라 불리는 문제의 일부분인데 여기에 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다. 여기서는 길드와 관련된 간단한 사실만 짚고 넘어가겠다.

중국 시계는 당시 유럽보다 앞선 것이었지만 귀족 관료, 황실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었지 시장 수요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조선의 과학 기술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중세 시계는 길드 장인들의 사업이었고 길드 회원들이 주축이 된 도시 공동체의 수요가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중세 시계의 기반이 된 수차 기술도 길드 장인들로부터 기원한다.

현대에 살아있는 길드

경제학은 현대의 시장경제를 시장, 기업, 국가라는 세 가지 주요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하지만 영미권이 아닌 다른 선진 시장경제로 시야를 넓혀보면 비시장적이면서도 비위계적인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함을 쉽게 알 수 있다.

독일 경제에서는 노동조합, 기업협회 등 시장도 아니고 기업도 아닌 제도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기업 간, 기업과 노동자 간의 상호 작용도 시장을 통하지 않은 직접적 관계에 더 많이 의존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협동조합과 같은 형태의 기업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자본주의의 다양성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체제가 암묵적 지식이 중요한 산업에서 비교 우위를 지닌다.

물론 독일의 조합주의와 남유럽의 협동조합 경제가 직접적인 길드의 후손은 아니다. 하지만 비시장적인 상호작용이 혁신과 품질 관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길드의 공동체 정신이 현대적 시장경제에 깃들어 있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레]
두레는 농촌에서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마을 단위로 둔 공동 노동 조직이다. 두레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두레를 전통적, 비시장적 공동 노동으로 보고 합리성에 기반한 시장적 노동과 구분하였다. 그리고 근대화로 전통적 관계가 사라지면서 시장으로 이행하면서 두레가 변질된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학자들은 전통적 관계를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 근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문화인류학자들은 전통적 관계의 파괴에 대해 비판적이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을 보면 두레는 단순히 전통적 관계에 기반한 비시장적인 노동 조직은 아니었다. 전통 두레에서는 노동의 양과 질에 비례하여 더 많은 생산물을 분배받는 시장적 행태도 관찰된다. 물론 경제적 약자를 돌보는 사회 복지 시스템으로서의 역할이나 공동체 의식, 오락적 의미도 지녔다.

한국의 전통적 관계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시장적인 이해 타산이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시장-전통적 관계의 이분법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1

결론

중세를 암흑기로 보고 길드나 장원의 공유지를 그 핵심 범인으로 보는 관점은2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일부 역사적 사실을 본인들의 이론에 끼워맞춘 측면이 있다.

근대의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중세의 자급자족적인, 거래의 자유가 억압된 경제라는 대비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 경계가 흐려진다. 중세에도 시장의 힘은 작동했고, 근대에도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장애물(혹은 보완적 제도)은 여전히 존재했다. 길드는 생각보다 시장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했고, 나름의 경제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근세를 거치면서 길드의 영향력이 점차 약해진 것은 맞지만 근대에도 여전히 여러 가지 경제적 제약들이 존재했고, 그것은 오늘 날도 마찬 가지다. 완전한 자유시장경제는 교과서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순수한 자유시장경제와 완전히 시장에 반해는 경제 사이에는 넓은 들판이 존재하고 현대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그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기눙주의로 빠질 위험

현재의 제도가 가장 효율적인 제도를 택한 결과라거나 최적의 형태로 진화한 결과라고 보는 관점을 기능주의라고 부른다. 길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기능주의적 해석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길드가 당시로서는 최선의 제도였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길드는 생각하는 것처럼 형편 없는 것은 아니었고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에 오래동안 존속했겠지만 길드가 최선의 제도였을리는 없다. 물론 현대 시장경제도 최선의 제도는 아니다. 자본주의의 다양성론이 보여주듯이 우리에게는 최선의 제도라는 것이 정의 가능하다고 볼 근거조차 없다.

길드는 당대의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제도였고 기존에 생각했던만큼 혁신을 가로 막지도 않았고, 오히려 중요한 혁신을 이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과학혁명이 중세의 위대한 발명품인 대학의 밖에서 일어났듯이 산업혁명은 길드 밖에서 일어났다. 물론 과학혁명이 중세의 중요한 진보 위에서 가능했듯이 산업혁명은 길드가 이룩한 중요한 성과들 속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중세의 대학은 과학혁명 이후 역할을 바꾸어 현대 과학기술의 요람이 되었듯이 길드의 정신은 현대 유럽 경제에도 살아있다.

모든 중요한 발전은 기존의 성과 위에서 그것을 파괴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Footnotes

  1. 안승택 (2009), “해방 전후 한국 농촌의 공동노동과 호락질: 공동노동에서 이탈하는 단독노동 배후의 공동체 이데올로기와 경제논리”, 비교문화연구, 제15집, 2호, pp. 35-77.

  2. 이러한 관점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이 어느 정도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