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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사학자 에릭 밀란츠는 왜 전통적으로 더 번영했던 곳들이 아니라 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는지 해명하면서 중세 도시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그는 자본주의의 기원을 근대에 등장한 합리성, 농촌의 자율적 변화(시장화), 유럽의 특수성, 우월성에서 찾는 견해에 반대하며 중세 유럽의 역사적 특수성에 주목했다.

유럽 이외의 시장 경제

앞서 설명하였듯 중세 유럽에도 시장이 존재했으며 다양한 시장 제도가 이미 발생했다. 중세 후기에 농업, 공업, 상업이 모두 발전했으며 농업도 상당 부분 시장화되었다. 하지만 서유럽의 중세는 결코 암흑기가 아니었을지라도 서유럽이 당대 가장 상업적으로 번영한 곳 또한 아니었다.

10-12세기 중국 송나라의 교역규모는 유럽과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었다. 산업 수준에서도 크게 발달하여 송의 철강, 석탄 생산량은 영국의 산업혁명 초기에 비견할만한 수준이었다. 송은 인도, 인도네시아, 페르시아만과 교역하였는데 일부 사치품에 국한되었다는 과거 이론과 달리 최근에는 쌀, 후추, 판재 등 일용품도 대량 수송되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또한 자본을 대는 상인과 해상 운송을 하는 상인이 따로 있는 초기 자본주의적 특징도 나타났고, 송 정부의 현금수입 가운데 20%가 관세수입이었다.

메디슨, "중국의 장기 경제 성과" 중에서

송이 존속하던 기간에 1인당 소득은 3분의 1이 증가하였고 인구는 5500만명에서 1억명으로 두 배 가량 증가하였다. 8세기 중국 인구의 4분의 3은 밀과 수수와 같은 건조지대 작물을 키우면서 북중국에 살았는데 13세기 말 중국 인구의 4분의 3이 양쯔강 이남(강남)에서 쌀을 재배하면서 살게 되었다. 또한 송은 세계 경제와 교역했으나 명(1368-1644) 초기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중국은 해양 기술이 유럽보다 우월할 때 세계 경제를 져버렸다.

11세기에서 15세기 남아시아의 무역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말라바르, 구자라트 등에서는 환어음, 공동무역 등도 나타났다. 13-16세기 북아프리카와 수단 지역에서도 대규모 교역이 이루어졌음다. 팀북투 같은 도시는 사하라 이남과 이북을 연결하는 역할로서 번영하였다.

18세기의 팀북투
팀북투는 오늘 날의 말리에 있다. 사하라 사막의 주변 지역인 사헬 지대에 있는 도시로서 매우 건조하지만 교역 도시로서 크게 성장하였다. 지금도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지만 말리의 사회, 경제적 여건이 매우 안 좋아서 관광으로 들르기는 어렵다.

사하라 카라반의 이동 경로
팀북투는 말리 제국과 사하라 이북을 연결하는 통상로 상에 위치하였다.

그런데 왜 자본주의는 서유럽에서 시작되었을까?

서유럽의 경우 중세부터 도시가 상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귀족 계급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적이었다. 독립의 정도는 시기마다, 지역마다 달랐다. 14세기 흑사병으로 무너진 봉건제 재건 시도는 도시의 저항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도시는 주변 농촌 지역을 착취함으로써 성장하였고 서유럽의 상인들은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적인 무역 네트워크를 건설하면서 착취 지역을 넓혀갔다.

서유럽 외의 지역에서는 상업이 발전했을지라도 모두 국가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일부 상인들의 정치적 권력까지 획득하였으나 계층으로서의 상인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하였다.

예외적으로 팀북투에서는 상인들이 권력을 가졌으나 기본적으로 노예 무역이 중심이 되었다는 한계가 있었고 상업 진흥보다는 농업 생산자에 경제 외적 강제를 부과하는 일에 더 몰두하였다.

[!중세 유럽 도시의 자치권]
11세기 경부터 유럽의 도시들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도시의 상공업자들은 독립국가를 이루기도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상당한 자율권을 가지고 있었다.

상공업자들은 도시의 번영을 뽐내기 위해  큰 성당을 짓고 도시 미관을 꾸몄다. 농촌에 기반했던 귀족들도 차츰 도시 생활에 빠져들게 되었다. 르네상스도 도시의 발달로 가능하였던 문화적 사건이다. 중세를 경멸하며 고대를 이상화한 르네상스가 중세에 발전한 도시를 바탕으로 시작된 건 아이러니라고 할 수도 있다.1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교회의 권력과 도시민들의 종교적, 예술적 열망은 중세 고딕 성당을 그 유산으로 남겼다.

도시의 자율권은 시기마다, 지역마다 달랐다. 베네치아는 중세와 근세 내내 상공업자들인 도시귀족에 의해 지배된 공화국이었다.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은 공화국과 영주에 의한 지배 사이를 오갔다.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 자유 도시들은 공화국은 아니었지만 도시 귀족들의 권력이 컸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국의 도시들의 자유는 그보다는 못했던 것 같다.

스위스 동맹은 신성 로마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시들과 주변 농촌 지역의 동맹(1291)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슈비츠, 운터발덴 세 개의 코뮌이 서약 동맹을 맺은 후 베른, 루체른, 취리히와 같은 큰 도시들이 가입하였다. 이후 베른과 같은 도시들은 합스부르크, 사부아, 프랑스, 부르고뉴 등 대귀족 가문과 투쟁하면서 스스로 다른 지역을 정복해서 영토를 넓혔고, 근세에 바젤, 샤프하우젠, 제네바와 같은 큰 도시들도 가입하면서 오늘 날의 스위스 영토가 확립되었다. 알자스 지방에 있는 뮐루즈의 경우 한 때 스위스 동맹에 가입되어 있었으나 프랑스 왕국에 귀속된 예다.

스위스 동맹의 역사

자본주의 도시 기원론의 요점

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등장한 것은 유럽인들이 특별한 선천적 자질을 가지고 있거나 서유럽만이 특별히 분권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중세에 성장한 도시가 주변을 착취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을 견인한 것이다. 농촌지역, 유럽 내 저개발 지역, 세계로 착취의 영역을 넓혀가면서 자본주의가 발달하였다.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도 상업이 발달했으나 국가의 지배 하에 있었기 때문에 주변 지역 착취에 한계가 있었다.

자율적인 도시의 발생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우연일 뿐 서유럽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야만 하는 일은 아니다. 도시의 성장은 후일 자본주의의 등장을 설명한다는 의미에서 독립변수이지만 서유럽의 이전 역사에 의해 등장한 것이라는 점에서 종속변수이다.

자본주의 도시 기원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상업 자본가의 착취를 자본주의 발전의 근본 동인으로 여기고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착취-축적-투자-착취”라는 마르크스적 시초 축적론에 근거한 것이다. 과연 축적은 서유럽에서만 일어났을까?

자본주의 발전의 일면을 설명하고 있고 근대성 이론, 유럽 우월주의에 대해 의미 있는 반론을 펼친 것으로 인정할 수 있으나 산업혁명 이후 발전을 근본적으로 설명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베네치아, 스위스, 저지대에 강력한 상인 국가가 있었는데 성장했는데….

  • 왜 하필 영국에서 혁신이 시작되었을까?
  • 왜 하필 18세기 말부터 혁신이 시작되었을까?

역사의 중요성

자본주의 도시 기원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역사가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갈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지리, 기후, 문화 무엇이든 경제 발전의 원인을 단일한 무언가로 설명하는 것은 위험하다. 모든 조건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믿음 또한 몰역사적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근대화 이론에서 말하는 근대 이후의 재산권 확립, 자유방임과 경쟁 정책은 자본주의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까울 수도 있다. 현재의 특징이 그것의 기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기능주의라고 하는데 이는 몰역사적인 오류 중 하나이다. 역사의 변화는 경로의존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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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보카치오(1313-1375)와 페트라르카는 자신이 사는 시대의 도시를 고대 그리스, 로마와 함께 예찬했고 그들이 비판한 것은 그들의 이전 세대이다. 그런데 그들이 살았던 시기는 어떻게 봐도 중세 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