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기후
들어가며
대체로 온대지방이나 한대지방에 위치한 국가들이 열대 지방에 위치한 국가들에 비해 소득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18세기 계몽철학자부터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 기후와 경제발전에 관한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와 경제발전 간의 관계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
기후와 농업
실제 농업 생산성에 있어 기후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실증분석에 따르면 열대지방이 온대지방에 비해 1인당 생산성이 20% 정도 낮다. 기본적으로 열대 지방은 너무 많은 강수량, 해충 때문에 생산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마도 인류가 재배하는 가장 생산성 높은 작물이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것이라는 점일 것이다.
실제 열대는 생산성이 떨어질까?
열대지방의 농업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단순히 기후 때문이라기 보다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제도, 지식, 인프라, 작물, 지형 등 다양한 요인이 결합된 것일 수 있다. 같은 열대라도 서아프리카의 생산성이 낮은 데 비해 동남아 열대지방은 세계적인 쌀의 생산지이다. 동남아 열대지방은 상대적으로 1년 내내 일정한 강수량, 오랜 전통과 인프라가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인구는 열대를 피해 동아프리카 고원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열대에서도 잘 자라는 카사바가 아메리카로부터 전래되고, 사헬지대에서 땅콩 등 잘 맞는 작물이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서아프리카의 인구가 동아프리카의 인구를 추월하였다.
아마존, 세네갈 세르 강 삼각주, 나이지리아 북부 관개지대, 기니, 시에라리온의 높지대 등에 적절한 작물을 충분한 지식과 인프라를 가지고 재배하여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열대 작물 카사바
남미 원산인 카사바는 유럽인들에 의해 전파되어 오늘 날 아프리카 등 열대 혹은 아열대 지방 개발도상국에서 주식이 되었다. 영양적으로 쌀이나 밀보다는 떨어지고 특별한 가공을 하지 않으면 독성이 강하다는 문제가 있다.
기후와 건강
건강과 경제발전은 매우 높은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수록 인적자본이 많이 축적될 수 있고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열대지방이 기생충, 풍토병 때문에 건강에 좋지 않다고 주장하고 어떤 학자들은 열대는 사람이 활동하기에 좋지 못한 기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아래 그림을 보면 위도와 소득 간에는 양의 상관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위도 가설

위도와 소득 간의 상관 관계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위도에는 주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과 남태평양 섬 국가들이 많은데 이들 지역의 소득이 낮은 것이 위도(기후) 때문인지는 이론적 경로가 불확실하다. 이들 국가들의 건강 지표가 그리 좋지 않은 것은 맞지만 저위도 국가들이 기후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은지, 아니면 소득이 낮아서 건강이 좋지 않은지는 확실치 않다.

적도가 표시된 세계지도 (출처 )
아프리카와 남미는 적도가 통과하고 그 외에 적도가 통과하는 곳은 모두 섬이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저위도 국가들의 소득이 낮은 것이 꼭 위도 때문이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지리적 조건,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가 말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소득이 낮다고 해도 위도와 소득 간에는 상관관계가 나타날 수 있다.
고위도 지역을 보면 유럽 국가들이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데 이는 고위도인 유럽에 작은 국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유럽과 거의 같은 위도에 있는 러시아, 몽고, 중앙아시아 등은 소득이 그리 높지 않은데 여기는 유럽을 다 합친 것만큼이나 넓은 국가도 있지만 통계에서는 유럽의 한 국가만큼 밖에 반영이 안되어 있다.
오늘 날에는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처럼 아시아에는 저위도 국가 가운데 고소득 국가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극복 불가능한 요소로 보이지는 않는다.
인도는 국가 자체가 아대륙(subcontinent)이라고 불릴 정도로 넓어서 위도 가설을 실험해보기 좋은 사례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 실증 데이터는 위도 가설의 반례로 보인다.

인도의 Net State Domestic Product per Capita(2018-2019): 인도는 저위도(열대)에서 중위도(온대)에 걸쳐 있는데 저위도(열대) 쪽이 소득이 높다.
위도와 기후
고위도 지역의 소득이 높다고는 하지만 대표적 고위도 지역인 스칸디나비아의 경우 인구 대부분이 온화한 남부 해안가에 몰려 살고 북쪽 한대 기후에는 거의 인구가 없다. 남부 해안가가 온화한 것은 단순히 위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멕시코 만류의 영향이다. 위도만 보자면 스톡홀름의 위도는 극한의 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보다 북쪽이다.
반면 저위도라고 하지만 남미나 아프리카의 인구 밀집 지역은 고원 등 기후가 중위도보다 오히려 좋은 곳이 많다.

남미의 열대기후와 고산기후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는 적도에서 수십 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백두산보다 높은 고원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1년 내내 봄같은 기후인데 이런 기후를 상춘 기후라고 부른다. 남미의 고대 문명은 이와 같은 상춘 기후대에서 발전했다. 같은 위도라도 브라질 벨렘은 전형적인 열대 우림 기후임을 알 수 있다. 남미의 남부에는 사람이 살기 좋은 온대 기후(팜파스)가 넓게 펼쳐지는데 유럽인의 도래 이전에는 그리 발전된 문명을 이루지 못했다.

팜파스
팜파스는 오늘날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에 걸쳐 있는 비옥한 초원지대를 일컫는다. 기후적으로는 아열대에서 온대에 가깝고 강수량도 풍부하다. 사진은 팜파스 북쪽에 해당하는 브라질 히우그란지두술 주의 풍경이다.
중요한 건 위도가 아니라 기후로 보인다. 너무 추우면 애초에 사람이 살 수가 없다. 중위도(타클라마칸)건 저위도(사하라)건 사막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더운 곳에서는 사람이 살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가 궁금한 건 이게 아니지 않을까?
[!기후 구분]
세계 기후를 구분하는 데에는 독일의 기후학자인 블라디미르 쾨펜이 1918년 발표한 것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오늘 날에는 쾨펜의 것이 그대로 사용되지는 않고 가이거가 수정한 쾨펜-가이거 기후 구분이 주로 사용된다. 여기에서 지도로 보자.쾨펜의 기후 구분은 강수량과 온도에만 치우쳐서 실제 인간 활동에 미치는 날씨의 영향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트루워사(Trewartha)는 농작물의 재배 기간을 중심으로 특히 쾨펜 기후 구분에서 문제가 된 중위도 지역 기후를 세분화한 기후 구분을 만들었다. 여기에서 지도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쾨펜의 기후 구분에서 한반도 남부와 홍콩의 기후는 생활 체감으로는 매우 다르지만 같은 기후인데 트루워사에서는 홍콩은 열대, 한반도 남부는 아열대로 구분된다.
위도나 기후는 역사적 변천을 설명할 수 없다.
🌏 위도는 불변인데 지역의 운명은 왜 계속 바뀔까?
- 유럽인의 도래 이전에는 북미의 고위도 지역보다는 남미의 저위도 지역에서 문명이 더 발전했다. 이곳은 저위도지만 열대 기후는 아니었다.
- 인도는 저위도에 있는데 근대 이전 문명이 크게 발전한 곳이었다. 동남아시아의 일부 지역도 상업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이곳은 아예 열대지방에 속하는 곳이었다. 현재는 싱가포르 등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저소득 지역이다.
- 북서유럽은 극히 최근에 와서야 문명의 발전을 선도하는 곳이 되었고 그 이전에는 다른 고위도 지역 뿐 아니라 문명이 발전한 저위도 지역과 비교해서 나은 점이 없었다. 스칸디나비아, 아이슬란드 등의 고위도 지역은 유럽에서도 낙후된 곳이었으나 지금은 최고소득국이다.
- 중국 문명은 북쪽에서 시작되었으나 송대 이후에는 아열대인 남쪽이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하였고 지금도 중국의 3대 경제권 중 상하이와 광둥 경제권이 아열대에 위치해 있다.
-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 중 한국만이 온대 기후고 나머지 셋은 (아)열대 기후에 있다.
결론
정확히 말하자면 위도가 아니라 기후가 중요하다. 극단적인 기후에서는 경제가 발전하기 힘든 정도가 아니라 인간이 살기도 어렵다. 당연히 기후는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준다.
그렇다고 기후가 경제 발전의 대부분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는 역사적 변천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남극이나 아마존 밀림, 타클라마칸 사막에 왜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는가는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