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론
대항해 시대 신항로 개척과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시대 국제 무역이 서유럽 산업혁명의 원동력이라는 아이디어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경제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들에게 널리 공유되고 있는 상식이다.
- 마르크스-레닌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자본축적이 이뤄질수록 이윤율이 저하되므로 자본가들은 잉여자본을 투자하고 상품을 판매할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제국주의를 채택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 역사 교과서에서도 19세기 후반 제국주의가 원료 조달과 상품 수요처를 찾기 위한 경제적 이유에 기인한다는 설명을 흔히 찾을 수 있다.
- 이와 같은 믿음은 많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공유되어 있는 것 같다. 시장 거래의 확대, 물질적 인센티브, 자본의 축적은 이들의 구미에도 맞는 것이니까.

해체 직전의 제국주의: 1945년 제국주의 국가들의 영토
제국주의의 의도는 경제적이었을까?
🏝️ **대부분의 식민지는 규모가 작아서 상품 시장과 투자처로서의 역할이 미미했다. **
- 1914년 프랑스 수출 중 식민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이었다.
- 유럽 국가들의 교역과 해외투자 대부분 유럽 국가와 미국 등 선진 공업국 사이에 발생했다.
- 거의 유일하게 인도는 경제 규모가 컸으나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인도와 대규모 교역을 했다. 영국이 무역을 원했으면 그냥 인도와 무역을 해도 될 일이었다.
🌐 19세기 후반 제국주의는 경제적 현상이자 심리적, 문화적, 정치적 현상
- 생명선을 보호해야 한다는 가상적 필요성 (영국의 중근동 지역, 미얀마, 카쉬미르, 아프가니스탄 정복, 일본의 조선, 대만, 동남아 정복), 사회진화론, 명백한 운명, 백인의 의무 등 문화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선동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1
- 중동, 이베리아 반도, 북방 십자군 때부터 유럽은 팽창적이었다. 유럽 외에도 팽창적인 국가, 문명은 역사 내내 존재했는데 유럽만 경제적 이유에서 팽창하여 산업혁명을 이루어냈다고 볼 근거는 없다.
- 샤를마뉴의 정복으로 기독교화한 작센족, 독일 기사단의 공격으로 기독교화한 발트족 등 칼끝으로 이루어진 기독교 전파는 계속 있어왔으며 여기에는 늘 기독교적 신념이 함께 했다.
[!리빙스턴의 탐험과 제국주의]-
리빙스턴은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탐험가이다. 잠비아, 짐바브웨 일대를 주로 탐험하였고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하는 등 많은 지리 상의 정보를 유럽에 전달했다. 아프리카에서도 대접이 나쁘지 않아서 리빙스턴의 이름은 잠비아에는 리빙스턴시를 비롯해 많은 지명으로 남아 있으며, 아프리카 곳곳에서 리빙스턴의 기념물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리빙스턴의 탐험은 서구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탐험가로 알려져 있지만 리빙스턴은 원래 선교사였고 스스로도 늘 선교사로 생각했다. 탐험의 목적조차 선교였다.
리빙스턴은 또한 노예 무역 폐지 운동으로도 유명하다.2 리빙스턴은 당시 오만 왕국의 지배 하에 있던 잔지바르(오늘 날의 탄자니아에 있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노예 무역에 분노했다. 영국은 오만 왕국과 동맹 관계였다. 리빙스턴은 고대부터 수수께끼였던 나일강의 발원지를 찾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는 자신이 유명해지면 노예 무역 폐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대를 앞서나간, 물질적 의도와는 거리가 멀었던 리빙스턴의 탐험이 제국주의의 첨병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것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사실 리빙스턴 스스로가 아프리카인들과 교역하여 이들을 개종시키고 교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리빙스턴의 "잠베지와 그곳의 부족들에 대한 탐험 이야기" 중에서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유럽인의 식민지는 적도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셀 수 없을만큼 요긴한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많은 부지런한 원주민들이 그 주변에 정착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농업과 무역을 평화롭게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그것이 정화시키고 고귀하게 만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르는 것이다.
물론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평화롭게 지내기를 원했기 때문에 리빙스턴의 의도를 나쁘게 보는 것은 지나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제국주의라는 것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는 교역인 것이 누구에게는 수탈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 리빙스턴이 탐험한 곳은 모두 영국 식민지가 된 것도 사실이고.
[!대항해시대와 기독교]-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대항해 시대의 개막 역시 기독교와 큰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주경철, "대항해 시대" 중에서
디오구두 코투라는 연대기 작가가 1612년 한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포르투갈 국왕은 언제나 동방의 정복에 대해서 영적인 힘과 세속적인 힘 두 가지를 결합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한 가지는 다른 것 없이는 행사할 수 없었다.” 포르투갈 인들에게는 자신들의 해외 사업이 이방인들을 올바른 신앙의 품으로 인도하리라는 의식이 강했다. 그리하여 ‘전도 국가’ 혹은 ‘해외 교회의 보호자’라는 개념을 소중히 여겼다…곧 각국 간의 치열한 선교 경쟁이 전개되었다. 해외 선교의 최전선에 포르투갈이 나가 있고, 이에 대해 에스파냐, 프랑스 등이 도전하는 양태가 벌어진 것이다. 중국, 인도, 아메리카 등지의 거대한 제국들을 자신의 힘으로 기독교화함으로써 자신의 영향 하에 두려는 것은 ‘순수한’ 의도와 ‘불순한’ 의도가 뒤섞여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항해 시대 유럽인의 기독교 전도는 가학적이기도, 피학적이기도 하였다. 이는 대항해시대 정복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
주경철, "대항해 시대" 중에서
사제들은 남아메리카의 기독교화를 ‘영혼의 정복’이라는 관점에서 보았다. 사제들은 강압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데에 전혀 주저하지 않았으니, 인디언의 우상과 신전 때려 부수기, 매질, 감금, 추방 같은 야만적인 방식이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전의 종교를 지키려는 귀족은 화형에 처해졌고…이런 식의 대규모 강제 개종이 실시되었다.
주경철, "대항해 시대" 중에서
대개 선교사들의 열의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진실한 것이었다…휴런 족에게 전도하기 위해 1644년에 내륙으로 들어갔던 프랑수아-조세프 브레사니 신부는 모호크 족에게 사로잡혀서 두 달 동안 잔인한 고문을 당하다가 가까스로 구출되었다…이 생생한 선교 기록은 당시 유럽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많은 선교사들에게 순교의 꿈을 심어 주었다. 선교사들의 삶은 실로 고난의 연속이었다…가장 심각한 문제는 선교사들이 이로쿼이 족이나 모호크 족에 잡혀가서 고문당할 위험이 상존했다는 점이다…캐나다에 들어온 예수회는 무력 정복을 꿈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극도의 피학적인 전도 방식을 택했다. 이것이 과연 어느 정도로 효과적이었는지 판단하기는 힘들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에도 물론 기독교적 신념이 작동하였다.
제국주의의 의도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
십자군, 대항해시대, 제국주의의 확대는 모두 경제적, 문화적 동기가 섞여 있었다. 제국주의적 침략이 정작 국가 전체적으로는 남는 장사가 아니었을지라도 직접적 이익을 얻는 이들은 존재했다. 물론 그들의 프로파간다가 받아들여진 것은 그것이 당시 국민 전체의 경제적 이해보다는 문화적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경제학자들의 무역의 이익에 대한 착각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무역의 이익은 기본적으로 특화에 의한 자원의 효율적 이용으로부터 생긴다.
비경제학자들은 무역의 양을 보고 무역의 이익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무역을 하지 않는다고 무역에 종사하는 자원이 그냥 놀게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부분에 종사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수출하고 배를 수입하는 국가가 무역을 하지 않는다면 자동차 만들던 일부 자원이 배 생산에 투입되는 것이다. 즉, 자동차 수출양이 모두 무역의 이익이 아니다.
무역을 하면 좀 더 효율적인 곳에 사용되기 때문에 이득이 될 뿐인데 무역을 통한 자원의 재배치가 10배, 100배의 경제적 성장을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역은 산업혁명을 설명할 수 없다.
| 생산성증가율(%) | 총생산 대비 비중 | 생산성 증가의 총생산 증가에 대한 기여 (%) | |
|---|---|---|---|
| 면화 | 1.9 | 0.07 | 0.13 |
| 소모사 | 1.3 | 0.04 | 0.05 |
| 방모사 | 0.6 | 0.04 | 0.02 |
| 철 | 0.9 | 0.02 | 0.02 |
| 운하, 철도 | 1.3 | 0.07 | 0.09 |
| 해운 | 0.05 | 0.06 | 0.03 |
| 농업 | 0.7 | 0.27 | 0.19 |
| 기타 | 0.02 | 0.85 | 0.02 |
| 총계 | 0.31 | 1.41 | 0.55 |
다른 모든 것은 동일하고 무역이 없는 영국이라는 가능 세계를 생각해보자. 무역이 없어서 영국의 면화 산업 규모가 절반, 그리고 규모의 경제 상실로 인해 면화 산업의 생산성 증가도 절반이라고 가정해보자. 면화 산업에 투입되었을 자원은 모든 산업에 골고루 투입된다.
면화 산업 생산성의 총생산에 대한 기여와 현실에서 면화 산업에 투입된 자원이 다른 산업에 투입된 결과 총생산에 대한 기여를 합하면 다음과 같다.
현실에서 0.13%였던 면화 산업의 총생산에 대한 기여가 가능 세계에서는 0.044%가 되었으므로 0.086%의 감소가 있었다. 따라서 전체 산업의 생산성의 총생산에 대한 기여가 0.55%에서 0.464%로 감소한다.
80년간 누적이 되도 8% 정도 차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