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경제란?
아프리카나 남미의 몇몇 국가들처럼 지하자원이나 한 두 가지 품목의 재배산업 등 1차 산업분야에 집중되어 있고 이들 산출물을 수출해서 살아가는 경제를 내포경제라고 한다.
내포경제는 얼핏 보기에는 수출입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개방경제처럼 보이나 몇 가지 점에서 선진적인 개방경제와 구조를 달리한다.
- 수출산업은 농업이나 광업과 같은 한 두 가지 품목에 집중되고 있는 반면, 수입품목은 국민생활에 필요한 생활필수품부터 자본재까지 다양하다.
- 주요 수출품은 석유, 커피, 고무, 사탕수수, 주석 등이고 수출산업은 대부분 내국인 산업이 아니라 외국인의 투자와 기술로 운영된다.
- 수출산업부문과 국내산업부문 사이에 이중구조가 형성되어 있으며 양부문 사이에 연관효과가 거의 작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수출산업의 성장이 국내산업의 성장을 유도하지 못한다.
- 이에 따라 고용 및 임금 수준에서도 이중구조가 발생하는데 임금이 높은 고급 전문직은 대부분 외국인이 차지하고 내국인은 주로 생산성이 낮은 전통부문에서 낮은 임금의 단순노동에 종사한다.
식민지기 조선의 사례
식민지기 일본은 자국의 쌀값 폭등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에서 산미 증식계획을 실시하였다.
| 연도 | 논 총면적(a) | 관개설비를 갖춘 논(b) | 수리조합(c) | (b)/(a) | (c)/(b) |
|---|---|---|---|---|---|
| 1920 | 1543702 | 341210 | 32204 | 22.1 | 9.4 |
| 1925 | 1578353 | 767860 | 82403 | 48.7 | 10.7 |
| 1930 | 1633322 | 960432 | 206013 | 58.8 | 21.5 |
| 1935 | 1701478 | 1161448 | 226052 | 68.3 | 19.5 |
실제 식미지기 조선의 쌀 생산량은 크게 늘었으나 조선내 소비량은 크게 늘지 않고 수출량이 크게 증가하였다. 쌀 생산은 증가하였으나 쌀로부터 얻는 소득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으며 밭작물은 오히려 생산량이 감소하여 전체적으로 농민들의 생활수준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조선의 쌀 생산량과 수이출, 조선내 소비량 추이

농가의 실질 농업 소득 추이

옥구평야
군산에 있는 옥구평야는 일본 사람에 의해 간척된 곳이다. 당시 설치되었던 수리시설로는 옥구 저수지가 남아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평야인 호남평야는 군산 일대인 만경평야, 김제 일대인 김제 평야를 일컫는다. 일제시대 이 지역은 한반도 최대 곡창지대가 되었다.

일제시대 군산항의 모습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은 군산항에서 수출되었다. 때문에 군산시는 일본인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하였고 오늘날까지 일제시대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수출인가 수탈인가?
조선에서 일본으로 쌀이 흘러들어간 것을 교과서에서는 수탈로 표현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강제로 뺐어간 게 아니라 돈이 오간 교역이므로 수출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은 조선만의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는 18030년부터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강제경작제도(cultuurstelsel)을 운영하였다. 이 제도는 농민들이 경작지 중에 20%를 반드시 커피, 사탕수수 등 현금성 작물에 이용하고, 내놓을 토지가 없을 경우 66일 간 현금성 작물 재배에 참여할 것을 강제하는 내용이었다. 나중에는 플랜테이션 경작지의 비중이 20%를 훨씬 상회했고 농민들은 66일보다 더 많은 기간 일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강제경작제도는 세금 대신 내는 현물, 노역이었고 그 결과 토지 이용은 “효율화”되었으며 수출은 급증하였다. 그런데 정작 1850년대부터 자바섬에는 식량 위기가 닥쳤고 공동체가 붕괴되어 농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수탈이라고 하면 쳐들어와서 무언가를 빼앗아 간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실제 제국주의 시대 수탈은 이러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수출로 보이지만 이것을 단순한 수출로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수탈이냐 수출이냐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누가 권력 관계에서 상위에 위치하였는가, 주민이 얼마나 실질적 선택권을 가졌는가, 이익의 분배는 어떻게 이뤄졌는가, 식민지 주민들의 생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종속과 동화, 감시 체제가 병행되었는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제국주의는 효율화, 교역, 문명화 그리고 선택권의 박탈, 종속과 동화, 불균등한 이익 배분 등 두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공정무역 담론이나 종속이론에서 보듯 제국주의의 그림자는 여전하다. 얼마를 지불해야 공정한 것인가? 공정무역은 진짜 공정한 것인가? 덜 불공정한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제국주의적 수탈과 마르스크와 종속이론의 착취]
마르크스나 종속이론가가 착취를 얘기했을 때 그 의미는 제국주의적 수탈과 비슷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착취는 재산권을 벗어나는 강탈이 아니라 재산권의 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구조적인 이익의 이전이다.